가요계의 거목들이 잇따라 무대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트로트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나훈아와 이미자가 최근 연이어 은퇴를 시사하며 가요계에 아쉬움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국민 가수’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은 두 거장의 퇴장은 단순한 개인의 결단을 넘어, 트로트의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뚜렷히 보여주는 듯 보인다.

‘가황’ 나훈아는 올해 초까지 마지막 콘서트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는 그의 59년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기록됐다. 1967년 데뷔한 이후 무려 200장의 앨범, 1200여개의 자작곡을 포함해 2600여곡으로 대중을 만난 만큼, 수많은 히트곡과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가 남긴 히트곡만 하더라도 ‘무시로’ ‘잡초’ ‘고향역’ ‘사랑’ ‘영영’ ‘테스형!’ 등 120여곡에 달한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역시 오는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다. 특히 이미자는 자신의 고별 콘서트를 ‘맥(脈)을 이음’이라고 명명하면서 자신의 66년 음악 인생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후배들을 통해 전통 가요의 정신과 가치 즉 ‘맥’을 잇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공연에선 후배 가수 주현미와 조항조, ‘미스트롯3’ 진 정서주, ‘미스터트롯3’ 진 김용빈이 무대에 올라 ‘동백 아가씨’ ‘여자의 일생’ ‘섬마을 선생님들’ 등 이미자의 대표곡을 함께 부른다.
이미자는 “은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공연이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드릴 수 있다”며 “66년간 지켜온 전통 가요의 맥을 후배 가수들이 이어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제 (전통 가요를) 물려줄 사람들이 있으니 이 사람들에게 또다시 ‘밑의 사람들에게 물려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공연을 열심히 하고 끝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트로트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 등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송가인, 임영웅, 정동원, 이찬원 등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변화다. 이들은 가창력은 물론 다채로운 매력으로 기존의 트로트 소비 세대인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포용하면서 트로트 음악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트로트계를 지켜온 거목들의 은퇴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쌓아온 음악적 업적과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후배 가수들은 선배들이 쌓아온 자산을 활용해 트로트계의 선순환 효과를 내고 있다. 젊은 후배 가수들이 선배의 명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면서다. 선배들의 곡이 단단한 바탕을 만들고, 후배 가수들은 그것을 과거의 유산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