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맞는 죽음은 차고 시리다
그는 50대 후반 간암 말기 남성이었다. 한때는 건강했을 구릿빛 피부엔 심한 황달 증세 탓에 누런 빛이 감돌았다. 횡경막을 압박할 정도로 복수가 차 배는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몇 걸음 내딛고 나면 항상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팔다리도 심하게 부어 움직임이 둔했고, 혼자서는 일상적인 동작도 버거워 보였다.
2주 넘게 간호했지만, 그는 내게 꽤 어려운 환자였다. 담담하고 굳은 눈빛.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에 무미건조한 말투로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고 차갑게 요청하는 게 전부였다. 처치를 받을 때도 귀찮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혼자였다. 보호자 없이 고독하게 버티는 모습은 그의 강직함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간호하는 내내, 나는 한 번도 그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강직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이 문득 가슴에 걸렸다.
상태는 점차 악화했다.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복수가 더 차오르면서 이제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혹여 낙상이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몇 번이고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권했지만,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귀찮다는 듯 짧게 말했다.
“가족이 없습니다.”
세상에 자기 곁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력은 더 떨어졌다. 강직했던 인상마저 희미해지자 더욱 신경이 쓰여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병실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씀하셔야 해요. 혼자 무리하지 마시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더 이상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표정에서 옅은 미소 한 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입원 기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더는 완화될 수 있는 증상이 없어 병원에서는 그에게 연고지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권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스테이션에 콜벨이 울렸다. 급히 달려가자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콜벨 누르지 않으셨어요?”
내 물음에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뒤늦게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버튼을 잘못 누른 거라고 설명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였고, 언제든지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의식 변화가 있는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다행히 묻는 말에 정확히 답했고 아직은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순간 머쓱하게 웃으며 “아, 자꾸 왜 이러지”라고 말했다. 내게 헛걸음을 하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머쓱하게나마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이다. 그를 간호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 웃는 표정이었다.
‘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분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연달아 괜찮다 말하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혹시나 이 작은 행동이 그의 의식 변화의 전조증상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연고자라던 그의 입원 기록에는 사실 형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