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전남 나주에서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묶어 지게차로 들어 올려 괴롭힌 사건이 최근 공론화되자 인공지능(AI) 개발자 4명이 모인 온라인 단체대화방도 시끌시끌해졌다. 스스로 “비정규 하청 노동자”라고 말한 이들은 그동안 짬짬이 시간을 내 ‘이주노동자를 위한 AI 노동 상담 웹페이지’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됐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제작한 이주노동자 노동 상담 웹페이지는 지난 1일 공개됐다. 12일까지 하루 평균 150~200번의 문답이 이어지며 총 2000번가량의 상담이 이 웹페이지를 통해 진행됐다. 페이지를 개발한 A씨는 12일 경향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개발자 생태계도 도급, 재하청의 전근대적 구조라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게 맞춘 AI 노동 상담 페이지로 발전해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이 웹페이지는 3~20년의 다양한 경력을 가진 개발자 4명과 이주노동자 관련 자문을 하는 현장 활동가 3명이 협업해 만들어졌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단체들이 영세한 편이라 상담 인력 확충에 한계가 있자 웹페이지로 보완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웹페이지에 AI기술을 활용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겪은 노동 문제,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 등에 대한 상담을 자국어로 물어볼 수 있는 페이지를 개발했다. ‘일하던 도중 다쳤는데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AI는 “고용주가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숨기거나 보상 신청을 막을 수는 없다”는 설명부터 시작한다. 고용노동부부터 이주노동자 지원센터까지 연락처를 안내한다. 노동자가 근로계약서 등을 올리면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노동자가 선택한 언어로 해준다.
지원하는 언어는 베트남어, 몽골어, 인도네시아어 등 총 20개다. 실제 이용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질문을 남겼다고 한다. 최근에는 네팔어로 ‘사업장을 옮기고 싶은데 허용되는 사유를 알려달라’고 묻거나 방글라데시어(벵골어)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방법’을 묻는 말도 들어왔다. A씨는 “노동부는 7~8개 국가 언어로 일방적인 안내를 하고, 전화상담이 가능한 언어·시간도 제한돼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최적화한 AI로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다. 웹페이지에서 상담사를 직접 연결하거나, 상담기관에 연결해주는 기능 등이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다. A씨는 “언어를 더 추가해달라거나, 이주노동자 단체들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도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