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독재 공포…대물림 된 트라우마

2024-09-19

20세기 초중반부터 이어진 증오가 극에 달한 사회 ‘민낯’ 들춰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 속 착취·원한·치욕·복수 등 그려내

나무좀

라일라 마르티네스 지음 |엄지영 옮김 |은행나무 |208쪽 |1만6800원

“다행히 우리가 여기 사는 동안 ‘산책’이나 하자고 새벽에 대문을 두드린 사람은 없었다.”

라일라 마르티네스의 장편소설 <나무좀>은 스페인 내전(1936~1939년)부터 프랑코 독재 체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스페인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초입에 등장하는 ‘산책’이라는 은어는 전쟁 이후 이웃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던 스페인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때의 ‘산책’은 스페인 내전 당시와 이후, 밤에 상대 진영의 인물을 찾아가 산책이나 하자고 꼬드겨 밖으로 끌어낸 다음, 벌판에서 총살하는 초법적 보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산책’은 끔찍한 적대와 폭력,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가 짓눌렀던 전후 스페인 사회를 짐작게 한다. 이 같은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나무좀>은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황량한 벌판에 고립된 집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전쟁, 가부장제, 빈곤…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뒤틀린 사회구조는 이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내몰았고 트라우마는 대물림된다. 당시의 역사와 사회구조는 소설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지만, 소설은 이를 자세하게 고증하거나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산책’이라는 은어나 ‘어둠’ ‘구덩이’ 등의 이미지, 저주와 주술, 유령의 집 같은 환상과 미스터리 요소를 통해 암울하고 숨 막히는 사회를 실감 나게 환기한다.

소설의 화자는 고립된 집에서 단둘이 사는 할머니와 손녀다. 이들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며 집에 얽힌 비밀을 이야기한다. 이 집에는 죽은 자들의 망령이 출몰하고, 때로는 집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인 듯 흔들리거나 움츠러들며 기괴한 소리를 낸다. 소설은 “문턱을 넘어섰을 때, 집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 작품 내내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집을 묘사한다. 집은 분노에 싸인 등장인물의 정서와 공명하며 켜켜이 쌓인 원한 그 자체처럼 그려진다.

집을 세운 사람은 할머니의 아버지, 즉 손녀의 증조부였다. 그는 포주였다. 가난하거나 폭력에 내몰린 여성들을 꾀어낸 후, 감금해놓고 성매매를 강요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황량한 벌판에 이 집을 세웠고 이번에는 그 집에 아내를 가두어두고 때렸다. 그의 딸인 할머니는 “결과적으로 이 집은 여자들의 몸 위에 세워졌고, 우리 어머니의 몸 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어머니의 고통과 두려움 위에서, 그건 선물이 아닌 저주였다”라고 말한다.

저주와도 같은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할머니의 딸, 손녀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짐작건대 그의 연인에게 살해당한다. 손녀는 집을 찾아오는 10대 여자아이의 환영이 어머니의 유령임을 직감한다. “어머니는 나를 보살펴주기 위해서 내가 자는 동안 곁을 지키기 위해서 꿈나라에 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 아니다…방금 내가 본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들에게 끌려갈 때 겪었던 극심한 공포 이후 그녀에게서 남은 것이었다.” 매일같이 어머니의 환영은 그들을 찾아왔고, 할머니와 손녀는 고통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녀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는 것처럼, 혹은 매일같이 사라져버려 우리의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을 하루하루 느껴야 하는 것처럼 다시 돌아왔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당연히 처벌받지도 않았다. 마을의 유력자 가문인 하라보 집안의 아들이 유력한 범인으로 추정됐지만, 관련해 어떤 정의도 실현되지 않았다. 하라보 집안은 대대로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짓밟아왔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고한 사람들을 초주검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패거나 깊은 산속에 데려가 이빨 사이로 총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무친 원한에도 손녀는 생계를 위해 10살 때부터 그 집에서 보모로 하루 12시간씩 일해야 했다.

대물림된 착취와 원한, 증오와 치욕은 섬뜩하면서도 악몽 같은 복수로 이어진다. 소설에는 ‘과르디아 시빌(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 헌병대)‘이 등장하지만, 이 같은 공적 체제는 정의 실현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용인했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스페인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라며 “당신에게 힘도 없고 목소리도 없을 때, 박해와 탄압을 받으며 기댈 수 있는 공식적인 정의조차 없을 때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남는 것은 복수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죽은 자들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라는 손녀의 독백처럼, 유령보다 무서운 건, 정의를 내팽개쳐버린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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