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현재, 연예계 ‘골든타임’은 사라졌다. 논란이 터지면 해명할 시간도, 진실을 가릴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SNS를 통해 퍼져나간 편린으로 여론재판은 끝나고, 프로그램 하차와 활동 중단은 ‘매뉴얼’처럼 즉각 집행된다. 바야흐로 ‘진실 여부와 상관없는 무조건적 아웃(Out)’의 시대다.
‘조폭연루설’에 휩싸인 조세호는 9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KBS 2TV ‘1박 2일’ 하차를 선언했다. 소속사를 통해 하차 소식을 알린 그는 개인 채널에 “최근의 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실망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남겼다. 조세호는 지방 행사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됐다며 조직폭력배로 지목된 A씨와의 친분 배경을 밝힌 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욱 신중했어야 했는데, 모든 인연들에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그 인연으로 인해 제기된 의혹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해명보다 빠른 손절”… 숨 막히는 퇴출 속도전
요 며칠 연예계를 강타한 박나래, 조세호, 조진웅의 사례는 달라진 업계의 살벌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에는 경찰 조사 결과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어느 정도 작동했지만, 지금은 SNS와 커뮤니티발(發) 논란이 터지면 그 즉시 ‘유죄’ 확정이다.
제작진과 광고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가 아니라 ‘리스크’다. 진실 공방이 길어지며 작품에 ‘비호감’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논란의 진위가 밝혀지기도 전에 출연진 명단에서 이름을 지우는 것이 최선의 ‘리스크 헤징(Risk Hedging)’ 수단이 돼버렸다.
배우 조진웅의 은퇴 선언은 이 흐름의 정점을 찍었다. 과거 소년범 이력과 관련된 폭로가 나오자마자, 그는 성폭행 연루 의혹은 부인하면서도 “배우의 길에 마침표를 찍겠다”며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30여 년 전의 과오에 대한 대중의 심판은 단 하루 만에 이루어졌고, 냉혹한 현실을 증명했다.
박나래와 조세호 역시 마찬가지다. 전 매니저의 갑질 폭로와 조폭 연루설 등 확인되지 않은 의혹들이 제기되자마자, 여론은 순식간에 ‘방송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다. 해명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비호감 낙인’이 찍히고, 프로그램 게시판은 하차 요구로 도배됐다. 쌍방 화해 후 합의라던지, 사실 여부를 따지는 이성적인 과정은 생략된 채, 오로지 ‘단죄’를 위한 광기만이 남은 모양새다.
■“무죄면 뭐 하나, 이미 죽었는데”… 이이경의 절규가 남긴 것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억울한 희생양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하차 과정에서 불쾌감을 드러낸 배우 이이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사생활 루머에 대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몇몇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았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논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아웃”이라는 방송가의 불문율이 작동한 것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내가 하지 않았는데 왜 나가야 하나”라고 항변하고 싶겠지만, 제작진 입장에서는 출연진 한 명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가 욕먹는 리스크를 감내할 수가 없다.
가수 김건모는 지난 2019년 성폭행 의혹에 휩싸이며 가정과 일 모두를 잃었다. 3년 뒤 성폭행 혐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6년이라는 공백기가 생겼고 당시 인기는 모두 사그라들었다. 지금 연예계는 거대한 ‘살생부’ 위에 서 있다. 누군가 손가락질을 시작하면, 언론 매체와 사이버래커들이 달려들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의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베고 본다. 해명은 믿지 않고, 퇴출은 빛보다 빠른 이 잔혹한 시스템 안에서, 다음 타깃은 누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