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는 명품을 입는다?…황하나 수백만원 패딩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

2025-12-30

법정에 선 인물의 죄목보다 옷차림이 먼저 회자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수갑도, 혐의 인정도 아닌 외투 한 벌에 여론의 이목이 쏠렸다. 지난 26일 마약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한 황하나씨(37)의 패딩 이야기다. 미국 디자이너 릭 오웬스(Rick Owens) 제품으로 추정되는 옷은 300만~400만원대의 고가 명품이다. 가수 지드래곤, 칸예 웨스트 등도 즐겨 입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다.

재벌가 출신, 반복된 마약 혐의, 해외 도피, 명품 소비가 한 프레임 안에 압축되면서, 황씨의 옷은 단순한 외투가 아니라 도덕적 분노와 계급 감정을 자극하는 상징이 됐다. 범죄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대중은 옷을 통해 ‘범죄자의 삶’을 읽고 판단했다.

사람들의 눈은 해외에서도 비슷한 지점에 멈춰 섰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UHC)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톰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루이지 만조니(27)가 지난해 12월 뉴욕주 대법원 첫 공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11건에 달하는 만조니의 중범죄 혐의 목록보다 오렌지색 신발과 밝은 회색 바지, 버건디색 스웨터의 패션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이 스웨터는 ‘만조니 스웨터’로 불리며 품절 사태를 빚었고, 그의 이미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밈으로 확산됐다.

미국 NBC뉴스는 만조니 패션에 쏠린 관심이 의료보험 산업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맞물려 있다고 전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만조니를 ‘심판자·조정자(The Adjuster)’ 등으로 부르며, UHC 로고를 변형한 티셔츠와 후드티를 제작해 판매하기까지 했다.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NBC뉴스에 “폭력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것으로 돈을 버는 기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억만장자와 그의 가족보다, 살인자에 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말했다. 범죄자의 옷과 이미지가 소비되는 장면 뒤에는, 만조니가 ‘가해자’이자 동시에 ‘저항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해석이 겹쳐 있던 셈이다.

범죄자의 옷차림이 사건보다 먼저 기억되는 장면은 되풀이돼왔다. 1990년대 후반, 907일간 도주 끝에 붙잡힌 탈옥수 신창원이 체포 당시 입고 있던 알록달록한 티셔츠가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신창원 티셔츠’로 불렸던 일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대상의 패션을 따라 한다’는 뜻의 신조어, ‘블레임룩’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범죄의 실체보다 이미지가 주목받는 현상을 단순한 가십이나 일탈적 소비로만 볼 수는 없다. 해외 학계는 이를 ‘문화범죄학’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문화범죄학은 범죄를 법정 기록이나 판결문에만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가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서 어떤 이미지로 재구성되고,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들여다본다. 범죄자는 단순한 피의자가 아니라 서사의 주인공이 되고, 범죄자의 패션은 사건을 해석하는 시각적 언어가 된다.

이때 옷은 우연히 주목받는 요소가 아니다. 문화사회학적으로 보면 범죄자의 옷은 사건·서사·상징이 겹쳐지는 지점에 놓인다. 범죄 자체는 뉴스로 빠르게 소진되지만, 패션과 겉모습은 사건을 기억하게 만드는 상징적 단서로 남는다. 신창원의 탈옥 사건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때 그 티셔츠’로 회자되고, 실제 상품으로까지 소비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복잡한 사건을 그대로 기억하기보다, 이를 하나의 이미지나 아이콘으로 환원해 소비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미국 문화범죄학자 제프 페럴은 저서 <문화 범죄학으로의 초대> 에서 범죄를 ‘법적 사실로만 존재하는 사건이 아니라,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서 이미지와 의미로 재구성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범죄는 발생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가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긴장과 옷의 관계도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킨다. 황하나의 명품 패딩이 강한 반응을 불러온 이유는 단지 고가 브랜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가 출신, 마약, 도피, 그리고 수백만 원대 명품 소비가 한 장면에 포개지면서, 패딩은 도덕, 계급, 소비 윤리가 충돌하는 시각적 장치로 읽혔다. 영국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저서 <도덕적 공황>에서 “사회가 위협을 느낄 때 특정 인물을 ‘민속적 악마’로 만들고, 그 인물의 외양과 상징에 분노와 판단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이때 옷과 스타일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사회가 불안을 처리하는 시각적 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패션은 ‘부적절함’과 ‘불공정함’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처럼 작용하고 대중의 분노와 판단도 범죄자의 옷에 머무른다.

대중 매체는 사건을 이미지와 상징으로 압축해 유통해왔다. 과거 체 게바라의 얼굴이 정치적 맥락을 벗어나 패션 아이콘으로 소비됐던 것처럼, 특정 사건의 옷 역시 의미의 이동과 변형을 겪는다. 다만 오늘날에는 짧은 영상, 밈, 쇼핑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하면서 그 속도가 훨씬 빠르고, 파급력도 크다. 법정 출석 장면은 몇 초짜리 영상이나 한 장의 사진으로 잘려 유통된다. 누리꾼들은 옷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를 반복 소비하며, 인물의 서사를 재구성한다. 미국에서 만조니의 스웨터가 밈으로 번지고, 지지자들이 관련 티셔츠와 후드티를 제작해 판매하거나 변호사 비용을 위한 모금으로까지 이어진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소비가 범죄를 미화하거나 희석시킬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점이다. 옷에 시선이 쏠리는 순간, 피해자와 책임은 화면 뒤로 밀려난다. 문화비평가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에서 “이미지는 현실을 이해하게 만들기보다, 그것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법정에 선 범죄자의 옷차림이 주목받는 순간, 사건의 책임은 사회적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감정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황하나의 패딩은 ‘사치의 증거’로, 대중의 감정과 분노가 투사되는 스크린이 된다.

결국 범죄자 옷을 둘러싼 관심은 패션의 영역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복잡한 사건을 끝까지 들여다보기보다, 겉모습이라는 가장 간단한 단서에 판단을 맡기려는 현상에 가깝다. 옷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 범죄는 사실보다 인상으로 기억되고, 책임은 분석보다 감정에 기대게 된다. 우리가 정말 마주해야 할 것은 범죄자의 패션이 아니라, 그 옷 속에 가려진 사건의 무게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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