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을 위해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시 약가를 우대하는 정책이 시행 7개월을 맞았지만 신청한 제약사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 탓인데도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별다른 보완책을 내놓지 않은 채 6개월 넘게 정책을 방치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지 자체가 있는 지 조차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보건복지부의 '국산 원료약 약가우대 현황'에 따르면 올 3월 제도 시행 이후 약가우대 혜택을 신청한 제약사는 한 곳도 없다. 복지부는 제약사의 국산 원료 사용을 촉진하고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산 원료약에 68%를 우대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사문화된 것이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한쌍수 이니스트에스티 대표는 “대다수 원료가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다 보니 팬데믹이나 지정학적 갈등 시 공급 불안이 반복된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도 25.6% 수준에 머물렀다. 원료 수입국은 중국(37.7%)과 인도(12.5%)에 집중돼 있다. 국내 생산액도 4조 4000억 원으로 전체 의약품의 13%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제도 설계부터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한다. 필수의약품 자체의 약가가 낮은 데다 국산 원료로 전환하더라도 생산 단가와 우대약가 간 차이가 거의 없어 기업 입장에선 참여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필수의약품으로 묶이는 제품의 연매출이 대체로 2~3억 원 수준인데 약가 우대 정책에 포함돼 매출이 늘어봐야 4억 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복합제나 복수 원료 제조처를 가진 경우 국산 원료 사용 비율이 일부에 그치면 약가 우대를 받을 수 없어 문턱도 높다. 게다가 낮은 채산성 탓에 원료를 생산하는 국내 업체 자체가 많지 않아 국산 원료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현장의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업계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이 없다”고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복지부는 지난 9월 간담회 한 차례를 개최한 것이 전부일 분 후속 논의나 보완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 가산 대상을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과 공급중단 보고 품목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약가 우대율도 대폭 상향하고, 국산 원료 생산업체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