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치맥 회동'이 재계에 던진 신선한 충격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2025-11-02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사내 타운홀미팅에서 “나와 리사 수 AMD CEO는 다르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먼 친척이라지만 수 CEO는 소위 ‘금수저 엘리트’였고 본인은 바닥부터 기어 올라와 현재의 엔비디아를 만들어냈다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읽힌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양분하는 두 회사 CEO가 5촌 친척 관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사자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가족 얘기’가 흘러나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 CEO는 부친이 통계학자, 모친이 회계사인 전문직 가정에서 자랐다. 또 과학고를 17세에 조기 졸업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과에 입학해 동 대학에서 25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IBM에 입사해 30세에 임원급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해 전설적인 반도체 설계자이자 경영자가 됐다.

황 CEO의 부친은 화학엔지니어, 모친은 교사로 알려져 있다. 10대 시절 황 CEO가 훗날 엔비디아를 창업한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데니스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황 CEO 역시 16세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으나 학비가 저렴한 오리건주립대를 택했다. 스탠퍼드대 석사 학위는 AMD·LSI로직 등에 취업한 후 월급을 쪼개 야간대학에서 취득한 것이다. 서른에 엔비디아를 창업했으나 창사 후 10년은 매달 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나와 리사를 비교하지 말라”는 말에는 자수성가해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을 일궈낸 황 CEO의 자부심이 묻어 있다. ‘월급쟁이 CEO’보다 창업가를 우대하는 실리콘밸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미국 문화에 비쳐볼 때 겸손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외려 이곳 빅테크 CEO들이 한국 기업인들보다 소탈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지닌 부와 명성·권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닥부터 능력을 증명해왔거나 창업자로 배곯는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그니피센트(M)7 CEO 중 사티아 나델라(MS), 순다르 피차이(구글)는 인도계로 대학원 때 미국에 건너와 막내 엔지니어 생활부터 시작해 기업 정점에 선 인물들이다. 팀 쿡(애플), 앤디 재시(아마존)도 사내에서 능력을 인정 받아 CEO직을 맡게 된 전문경영인이다. 황 CEO, 일론 머스크는 이민자 출신 창업자로 배고프던 시절을 견뎌낸 끝에 성공을 안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부터 ‘금수저’는 양친이 의사인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뿐이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치맥 회동’이 화제를 모았다. 자산이 250조 원에 달하는 황 CEO와 재계 총수가 시민들 사이에서 평범한 치킨을 먹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 듯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평범한 한식 고깃집과 인앤아웃, 빵 가게에서 황 CEO나 샘 올트먼 오픈AI CEO 같은 인물을 마주쳤다는 얘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쥐었다고 귀족처럼 ‘평민’과 분리돼 산다는 것이 외려 ‘후진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황 CEO는 한국 시민들 앞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20년 전 지포스 GPU 영업을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누비던 그다. APEC 이전 한국 시민들 앞에 마지막으로 선 때는 2010년. ‘스타크래프트2’ 출시 행사의 협력사 자격이었다. 가까이는 2018년 황 CEO가 인공지능(AI) 협력을 위해 삼성전자를 찾았으나 문전박대당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황 CEO의 “내가 삼성 GDDR(그래픽용 메모리)을 쓰고 있을 때 너는 어렸다”는 말에 이 회장은 “어리고 오만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뼈가 있는 문답이다. 빅테크 리더들은 끊임없이 배고픈 시절을 돌아보며 ‘기본’을 되새긴다. 선대의 유업을 이어받은 국내 기업 총수들은 시장을 존중하는 겸손함부터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며 ‘성공 DNA’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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