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삼성 청년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싸피) 서울캠퍼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되고, 삼성이 잘살아야 삼성에 투자한 사람들도 잘산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삼성이 경제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잘해 주길 부탁한다”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지만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이번 일정은 ‘중도보수’를 선언한 이 대표의 친기업 행보의 일환이다. 하지만 진정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부터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했다. 지난달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며, 민생을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했다. 이뿐이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자 반도체 연구개발(R&D) 전문직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허용’에 군불을 때며 산업계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곧바로 당내 반발과 지지층인 노동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꼬리를 내렸다. 자신의 핵심 정책인 ‘기본사회’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당초 사퇴하겠다던 위원장까지 맡았다. 20대 민생 의제라고 제시한 것도 뜯어보면 지역 화폐 확대, 주 4일제 도입, 노란봉투법 등 반시장·친노조 정책뿐이다. 요즘 자주 표방해온 ‘먹사니즘’ ‘잘사니즘’과는 180도 다른 포퓰리즘이다. 재계 인사를 만날 때만 친기업 모습을 보이면서 실상은 노동계 등 지지층을 의식하는 갈지자 행보인 셈이다.
이 대표는 이 회장에게 “일자리든, 삶의 질이든 다 경제활동에서 나오는 만큼 글로벌 경쟁이 격화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경제계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부터 철회하는 게 순리다. 오죽했으면 18일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가 국회까지 찾아가 “회사법의 근간을 훼손해 경제계는 물론 대다수 상법학자도 법리적 문제가 크다고 지적해왔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했겠는가. ‘보여주기식’ 만남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반시장·반기업 입법 폭주부터 멈춰야 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화급한 민생 현안은 뒷전인 채 언변으로 중도층 외연을 넓히려는 건 꼼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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