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학(學)개론 7 : 꿈보다 해몽 주의, 안경 선배의 귀여운 티셔츠 해설집 (上)

2024-07-25

북산고교 농구부의 부주장인 권준호.

주장 채치수와 달리 성격이 온화하여 후배들에겐 보완적인 리더십을 보여준다. 우등생인 데다 장신(178cm)에 외모도 멀끔하여 여성 팬이 대단히 많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등번호는 5번.

강백호는 권준호를 ‘안경군(メガネ君)’이라고 부른다. 일본어에서 이름 뒤에 ‘군(君)’은 동등하거나 손아래인 상대를 정중하게 부르거나 이를 때 붙이는 것으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반말을 일삼는 강백호의 막 나가는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만 장유유서의 한국 정서상 이런 시건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는지, 번역할 때 ‘안경 선배’로 순화되었다.

안경 선배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귀엽기만 하고 끝날 때도 많지만, 해당 장면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할 때도 있어서 전수조사를 해보았다.

개수는 총 26개. 원작(만화) 작중에 등장하는 것이 18개, 표지 및 속표지에 등장하는 게 6개,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2개 등장한다.

1. Q짱(Q타로)

강백호와 채치수의 대결 장면에서 안경 선배는 Q짱(Qちゃん)이 그려진 옷을 입고 등장한다. 작중 안경 선배의 강렬한 첫 등장이다.

Q짱은 <オバケのQ太郎>(요괴 Q타로)라는 아동 코믹 만화의 주인공으로, 종족은 오바케(요괴 또는 도깨비)다. 도라에몽의 작가인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으로, 구성도 도라에몽과 유사하다. 존재할 수 없는 종족의 개체가 인간의 가정에 얹혀살며 주인공 소년과 우정을 나누고 우당탕탕하는 에피소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연재 초기의 <슬램덩크>는 편집부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학원 폭력물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노우에의 작화 스타일도 자리 잡기 이전이라, 얼굴선이 거칠고 마초스러운 느낌을 준다. 특히 안경 선배 옆의 달재는 같은 캐릭터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런 그림체와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로 소년 만화의 균형을 맞추고, 다음 장면을 위한 복선으로 Q짱을 등장시킨 것 같다.

실제로 바로 다음 장면에서 Q짱에 어울리는 코믹한 내용이 전개된다.

다만,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는 Q짱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Q짱의 머리카락은 세 가닥인데, 안경 선배의 티셔츠에 그려진 녀석은 다섯 가닥이기 때문이다.

2. 소

소 티셔츠가 나오는 장면의 맥락을 보면, 농구부에 입부하려는 강백호가 농구부실(로커와 비품이 있는 곳)을 밤새 빤딱빤딱 청소해 놓지만 채치수는 모르는 척한다. 그러고 나서 백호의 끈기와 근성을 좀 더 시험하기 위해 체육관과 농구공의 청소 상태를 빌미로 부원들을 갈구는 장면이다.

사실 채치수는 이미 소연이의 영업에 넘어가서 강백호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엉덩이를 보인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신입 부원의 잔존율이 매우 낮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끈기’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강백호를 시험한다. 채치수의 의도는 적중하여 백호는 그날 밤 밤새 공을 닦게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소는 우직함과 끈기의 상징이다. 농경이 경제의 근간이었던 사회에서 비싸고 귀한 것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자본 또는 훌륭하다는 뜻의 영단어 capital의 어원도 소(cattle)다(참고로, 이 내용은 <육식의 종말>에 자세히 나온다).

정리하면, 안경 선배의 옷에 그려진 소는 끈기 있으며 값지고 좋은 것, 즉, 유망한 농구 꿈나무 강백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 해마

안 선생님이 최초로 등장하는 날, 안경 선배의 티셔츠에는 해마가 그려져 있다.

해마의 생태 중 특이한 것은, 수컷이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점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 중 해마가 유일하다. 보통의 생물은 암컷의 몸에서 수정하여 암컷이 출산하는데, 해마는 난자가 수컷의 몸으로 들어가서 수컷의 몸에서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진다. 수컷은 출산 과정에서 산통도 겪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웅이 구분된 생물 중 임신과 출산을 하는 개체를 우리는 암컷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 아닌가?

생물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출산 가능 여부가 아니라 미토콘드리아 DNA의 유전 여부로 암수를 가른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로지 모계로만 유전된다. 이에 따라 해마는 수컷이 임신/출산을 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해마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중에서는 ‘부성애’를 스토리라인의 중심으로 잡은 것이 많다.

감독인 안 선생님이 작중 처음 등장한 날이다. 이노우에는 안 선생님이 부성애 같은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구상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적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4. 오리

풋내기 슛에 성공하여 한껏 들뜬 강백호를 칭찬하는 장면에서 오리 티셔츠를 입었다.

채치수는 이런 강백호를 보고 얼간이(たわけ)라며 냉랭했지만, 역시 안경 선배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두 형님의 이런 상호보완적인 리더십을 두고 한나 선배는 북산 명물 ‘당근과 채찍(飴と鞭)’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오리는 무슨 뜻일까.

강백호는 레이업 슛을 풋내기 슛이라며 업신여기고 있었다. 참고로 풋내기 슛의 원어는 서민슛(庶民シュート)으로, 강백호의 시건방이 더욱 부각되는 단어였지만 번역하면서 약간 순화되었다. 그러던 강백호가 그거 성공했다고 기뻐서 들뜬 걸 비웃기 위해 오리가 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어에서 마음이 들뜬 것을 浮かれる(우카레루)라는 동사로 표현하는데, 오리가 물에 떠 있는 것도 浮かぶ(우카부)라는 동사를 써서 같은 한자(浮, 뜰 부)를 쓰기 때문이다.

근데 백호가 신난 건 풋내기 슛이 성공한 탓도 있지만, 소연이랑 둘만의 특훈을 해서 그런 것 아닌가?

5. 자라

능남과 연습 시합한 다음 날, 안 선생님이 모두를 격려해 주는 장면에서 자라를 입고 있다.

이 장면에서 자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처음 안 선생님이 능남과의 연습 시합을 잡았다고 알려줄 때, 작년 현 4강의 강호인 능남의 이름만 듣고 모두 부담스러워한다. 북산은 매년 초반에 탈락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북산이 느끼기에 능남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에서 하늘과 땅 수준의 격차를 표현할 때 쓰는 月と鼈(つきとスッポン, 달과 자라)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연습 시합 전 북산의 인식으로는 능남이 달, 북산이 자라였다.

그런데 뚜껑 열어보니, 박빙의 승부 끝에 근소한 차이로 졌다. 게다가 선생님이 열심히 하면 이길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니 모두 크게 고무된다.

자라 또는 거북이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다. 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꾸준히 노력하는 성실함의 상징이 자라인 것이다. 자라처럼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

6. 고양이(ねこ)

송태섭이 퇴원하고 처음 등교하는 날 입은 고양이 티셔츠.

제멋대로 자기중심적인 고양이의 이미지를 송태섭의 문제아 설정과 동일시한 걸까?

7. 러브(ラブ, 愛)

이날은 송태섭과 강백호가 짝사랑이라는 공감대로 의기투합한 날이다.

앞면은 ‘러브(원어는 ラブ)’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한자로 愛(사랑 애)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로 두 사람을 응원해 주는 안경 선배.

농구도 하고 사랑도 하는 두 사람. 감동적인 얘기야. 그렇죠, 안경 선배?

8. 토끼(うさぎ)

안경 선배의 티셔츠 중 가장 유명한 토끼 티셔츠. 정대만이 처음 등장하는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에서 계속 입고 나오기 때문에, 출연 횟수로 1등이다. 험악한 분위기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깜찍한 토깽이가 시선을 강탈한다.

왜 토끼여야 했나. 일본 네티즌 수사대도 풀지 못한 비밀이다.

가장 처음 등장한 Q짱과 마찬가지로,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학원스포츠 만화로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티셔츠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정대만의 분량이나 설정이 그냥 지나가던 깡패였기 때문에, 이후 전개되는 내용에 맞춰 과한 해석을 하기에도 곤란하다. 안경 선배도 처음에는 정대만을 몰랐던 상태라, 2년 만에 체육관에 온 친구에게 신발이나 벗으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노우에는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의 내용이 길어지면서 정대만 캐릭터와 정이 들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당초의 설정을 변경하여 그를 주전 5인방의 마지막 멤버로 낙점한다. 원래의 구상은 백호 군단의 리더인 양호열이었다.

참고로, TVA의 이 장면에서는 토끼 그림이 없어지고 민짜 티셔츠로 나온다. TVA 제작진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변경했다고 한다.

9. 감

감은 작중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제59화의 속표지에 나온다.

아래에 감을 뜻하는 일본어 柿(카키)가 알파벳으로(KAKI) 쓰여 있다.

이 속표지는 당시 연재 중이던 주간 소년점프에서 연재 1주년 기념으로 한 캐릭터 인기투표 순위에 따라 그려진 것이다. 따라서 1위 강백호가 가장 크게 그려져 있고, 서태웅-채치수-윤대협-양호열-안경 선배 순서로, 대부분 북산고 인물이 상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농구부 최후의 날’ 에피소드가 한창 진행 중인 때라 정대만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기 이전이다.

이후 연재 5주년에 다시 소년점프에서 인기투표를 하는데, 이때는 순위가 크게 달라진다. 1회 투표에서는 18위에 불과했던 정대만이 서태웅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다. 안경 선배는 6위에서 8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왜 감이 등장했을까.? 그림 그리다가 의식의 흐름과 말장난에 의해 넣은 것으로 생각한다. 말 그대로 ‘그냥’.

만화 또는 그림을 그린다는 말(동사)은 일본어로 描く(かく, 카쿠)이다. 이를 명사형으로 바꾸면 かき(카키)가 되는데, 감(柿, かき, 카키)과 발음이 같다. 안경 선배는 귀여운 그림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는 큰 설정만 미리 정해두고, 구체적인 그림은 매주 생각나는 대로 그렸을 것이다. 내용과 어울리는 그림이 타이밍 좋게 떠오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거나 즉흥적으로 그려야 했을 것이다.

감 이후로 이노우에가 과일에 꽂힌 것인지, 과일이 연달아 나온다.

10. 바나나(BANANA)

‘농구부 최후의 날’ 중 정대만과 농구하던 과거를 이야기해 주는 안경 선배. 고1 때 바나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농구부에 입부했다. 뜬금없이 웬 바나나?

이 장면의 맥락을 보면, 권준호가 자기소개를 하기에 앞서 채치수가 소개를 했고, 190cm가 넘는 신입생의 입부소식에 난리법석이 벌어진다. 이때 이미 채치수를 ‘고릴라’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다.

고릴라에서 바나나로 이어지는 흐름은 이미 한번 등장한 바 있다.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들으면 기차가 길다는 사실까지 이어지듯, ‘고릴라’ 한마디에 자동 연상으로 바나나를 그려 넣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앞서 ‘감’에서 살펴보았듯, 안경 선배의 티셔츠가 항상 대단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 것이다.

11. 딸기

무릎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둬야 했던 정대만이 시합을 남몰래 훔쳐보고 체육관을 떠나는 장면이다. 정대만은 몰래 다녀가지만 권준호가 눈치챘다. 그리고 "그 후 두 번 다시 대만이는 여기에 오지 않았어"라고 한다.

이때의 딸기. 딸기는 일본어로 이치고(イチゴ)라고 한다. 이치(いち)와 고(ご)로 나누면 이치는 1(一)이니까 한번 떠났다(go)는 뜻일까?

딸기가 세 알인 이유는, 정대만의 본명인 미츠이(三井)에 3(三)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혹은, 한 개나 두 개만 그리면 민망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12. 생선

‘농구부 최후의 날’ 사건이 마무리되고 정대만이 농구부에 돌아온 날, 생선 티셔츠가 등장한다. 이 생선은 무엇일까?

일견 조기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조기일 가능성은 작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위상을 자랑하는 조기지만, 일본에서는 영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イシモチ(이시모찌)라는 이름으로 서민의 밥상에 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묵 재료로 갈려버린다. 애초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생선이라면 1등은 단연코 참치이다. 그러나 이건 아무리 봐도 참치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비인기 생선인 이시모찌를 티셔츠에 그렸을 리도 없다.

그렇다. <슬램덩크> 공식 화려한 생선 신현철 도미다! 지느러미 위치나 등 가운데의 선으로 봤을 때, 도미로 보인다.

또한 이 장면의 맥락을 보면, 이날은 정대만이 심기일전하여 머리까지 자르고 농구부에 돌아온 날이다. 정대만과 함께 등장한 이 생선은 팀의 주역이 될 수 있는 화려한 생선, 도미라고 봐야 한다.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화려한 3점슛으로 활약하는 정대만이 도미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노우에가 도미를 비중 있게 출연시킬 결심을 언제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도미(및 가자미) 메타포는 변덕규 캐릭터와 함께 구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덕규의 본명은 魚住純(우오즈미 준)으로, 이름에 魚(물고기 어) 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노우에는 캐릭터 이름도 하나하나 공들여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이미 출연이 확정된 도미를 정대만과 함께 깜짝 등장시켜 앞으로의 정대만의 활약에 대한 복선을 깔았다고 생각된다.

13. 8분음표

상양과의 시합에서 이긴 다음 날. 카나가와현 결승 리그(4강)를 앞두고 전국 제패를 향한 의지를 다지는 장면에서, 안경 선배의 티셔츠에는 8분음표가 있다.

상양과의 시합이 8강전이었다. 8강에 승리한 즐거움을 8분음표로 표현한 것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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