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노선은 프랑스가 독일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만든 대규모 방어시설이다. 프랑스 정치인·군인 앙드레 마지노(1877~1932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 기능을 못 했다. 방어시설의 튼튼함에 집중하고 본래 목적에 맞게 방어선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었다.
퇴직자는 노후 방어선이 필요하다.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가 퇴직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됐다. 요즘 낮은 수익률이 주된 문제로 지적되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퇴직금의 안정적 수급이다.

IMF 외환 위기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대거 발생했다. 기업들이 퇴직금을 장부상으로 기록하고 실제로는 회사의 운전자금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에서는 퇴직금을 외부 금융회사에 위탁함으로써 기업이 도산하더라도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관련 법상 퇴직금과 퇴직연금제도가 아직도 병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르면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퇴직금제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다 보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근로자의 퇴직연금제도 가입률은 전체 53%에 불과하다.
특히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가입률이 낮다. 10~29인 회사가 48.2%, 5~9인 회사는 29.5%다. 300인 이상 큰 회사는 가입률이 70.2%에 이른다. 도산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규모 기업의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제도의 미가입으로 퇴직금을 떼일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30인 미만 기업을 위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가 지난 2022년 도입돼 운영되고 있지만 시급한 퇴직금 보호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노후설계가 뚫리지 않으려면 퇴직연금제도가 지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우선, 퇴직연금제도의 본래 목적인 근로자의 안정적 퇴직금 수급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구시대적인 퇴직금제도를 폐지하고 퇴직연금제도로 단일화해야 한다. 사업주의 부담을 이유로 단일화를 반대하는 일부 의견도 있다. 이러한 반대가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받지 못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중소기업의 퇴직연금도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거나 기업의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최근 국내외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퇴직금을 비롯해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2024년 임금체불근로자는 28만3000명이며 체불액은 2조원을 넘었다. 퇴직연금제도가 실패한 마지노선이 되지 않도록, 본래 목적에 맞도록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연금금융)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