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부실로 인해 건설업계의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앞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부동산 PF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건설사 유동성 우려가 커졌고 올해들어 다수의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4월 위기설'이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당국은 부동산 PF 제도개선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을 20%로 끌어올리는 등 대안을 마련했으나, 일각에선 중소건설사 현실을 감안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PF 제도개선의 핵심으로 현재도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받고 있는 리츠의 활성화를 대안으로 꼽고 있다.
◆ 올해 들어 7개 건설사 법정관리…미분양 급증에 PF대출 상환 '차질'
17일 건설업계와 관계당국에 따르면 올해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건설사는 신동아건설(시공능력평가 58위), 삼부토건(71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대저건설(103위), 삼정기업 (114위), 안강건설(138위), 벽산엔지니어링(180위) 등 총 7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면 부실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데 대우조선해양건설의 2023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838.8%였고 벽산엔지니어링은 468.3%, 삼부토건은 지난해 3분기 기준 838.5%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중견건설사의 상황도 좋지 않다. 태영건설(24위) 747%, 금호건설(20위) 640%, 코오롱글로벌(19위) 559%, HJ중공업(36위) 498%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사업보고서 제출기한 마감인 오는 31일 이후, 예상보다 악화된 성적표를 받아든 건설사가 속출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4월 위기설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기에 지난 1월 기준 미분양은 7만2천624가구,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11년 3개월만에 최대치인 2만3천가구에 육박하면서 건설업계를 향한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미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이 증가함에 따라 분양수익으로 대출을 상환하려던 계획이 어긋나면서 부동산 PF 부실 규모가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및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00조원 미만이었던 PF 익스포저(대출+보증)는 4년 만에 160조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토지담보 대출과 새마을금고 대출 등 유사 PF 대출을 포함하면 무려 230조원에 이른다.
부동산 PF의 위기는 과거 수차례 우리 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지난 2011년 30여개 저축은행이 뱅크런으로 10만명 이상의 고객이 손실을 입었고, 2019년에는 증권사가 PF사업에 제공한 대규모 채무보증이 문제가 되었으며, 2022년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되기도 했다.
아울러 부동산 PF 구조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지속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단기수익 추구 경향과 디벨로퍼의 영세성으로 인해 5% 이내 자기자본으로 토지 매입부터 고금리 대출(브릿지대출)을 받아 진행하고 대출기관은 저자본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사업성을 평가하기 보다는 건설사·신탁사 보증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듯 높은 위험성을 내포한 저자본-고보증 구조는 부동산 경기 위축, 사업여건 악화 등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시행사→건설사→금융사로 리스크 확산이 가능하다는게 정부당국의 진단이다. 아울러 PF 정보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시행사가 사업착수 여부를 판단하거나 투자자·대출기관이 투자·대출 판단하는데 제약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 디벨로퍼는 금융사·연기금 등 지분투자자를 유치해 30∼40% 자기자본으로 토지매입 후 건설단계에서 PF대출을 받고, 단순 분양수익 뿐만 아니라 임대수익도 갖춰 수익구조가 안정적이다.
◆ 정부 자기자본비율 20% 수준으로 상향 유도…'PF 산업구조 선진화 방안'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장기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을 20% 수준으로 상향 유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PF 산업구조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정부의 구체적 방안은 ▲인센티브 등을 통한 자본 확충 지원 ▲현물출자를 통한 안정적 사업구조 마련 ▲PF 대출시 사업성 평가 강화 ▲책임준공, 수수료 등 불합리한 관행 개선 ▲PF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이다.
또한, 최근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올해부터 PF 조정위원회를 상설 운영체계로 전환하고, 최대 8개월이던 조정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일단 PF 조정위원회의 상설 운영에 대한 건설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건설·주택업계(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에 따르면 PF 조정위원회가 재구성된 2023년 9월 당시, 급격한 금리 인상, 공사비 급등 및 미분양 증가로 PF 분쟁 사업장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중소 하도급사의 부도·파산과 주택 공급 계획의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업계에선 국토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면서 "어려워진 시장을 위해 국토부가 선도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보인 모범 사례"라고 평했다.
이에 더해 업계는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현재 국토부 훈령으로 운영 중인 PF조정위원회를 법정 위원회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부동산개발사업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 협조를 요청했다.
◆ 중소건설사 현실 반영 속도조절 필요…대안으로 떠오른 '리츠', 신뢰회복 숙제도
업계 일각에선 자기자본비율을 20%수준으로 상향하는 정부 방침에 이견을 제기하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도 대형 건설사를 제외한 건설사들은 자금난에 허덕이는데 자기자본비율 기준이 높아지면 영세 업체들은 사업 진행 자체가 크게 위축돼 부도나 파산하는 업체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도 속도조절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황순주 KDI 선임연구위원은 "저자본·고보증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현실을 고려할 때, 자기자본비율을 일시에 크게 높이는 것은 어렵고 부작용도 클 것"이라며 "먼저 다소 약한 수준의 자본확충 규제를 도입하여 시행사가 스스로 자본을 확충하거나 지분투자자를 유치할 필요성을 마련하고, 동시에 자본확충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부동산 간접 투사회사인 리츠(Real Estate Investment Trusts: REITs)의 활성화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황 위원은 "리츠는 주식의 30% 이상을 일반의 청약에 제공해야 하는 법적 공모의무가 있어 막대한 개발이익을 사회화하고 있다"며 "이미 리츠에는 자기자본비율 규제가 적용되고 있고 일반형 개발 리츠의 경우 이 비율이 40%를 넘어간다며, 일반적인 PF사업장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 역시 PF 제도개선 방안으로 리츠 활성화를 꼽고 있으나, 최근 리츠 운용사의 횡령 등 금융 사고 발생으로 발생한 신뢰도 하락은 지속해서 관리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충남 천안 소재 뉴스테이 사업을 기반으로 조성한 리츠인 마스턴투자운용의 '마스턴 11호'는 시행사의 모회사이자 자산관리회사인 한 업체가 임차인이 낸 임대료와 보증금 50억원을 별도 계좌로 무단 수취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또, 스타에스엠리츠에서는 현직 임원의 30억8천만원 횡령 혐의가 발생해 주식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이에 지난 7일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리츠가 보다 주주 친화적이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최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