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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강업계(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가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맞서 '반덤핑' 관세 카드를 하나둘 꺼내들고 있다. 철강 공급 과잉으로 국내 기업이 설자리가 좁아지자 내수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그룹 자회사 동국씨엠이 중국산 컬러강판·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에 나서기로 했다. 값싼 도금·컬러강판이 계속해서 국내로 유입됨에 따라 내수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국내 업체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동국제강그룹은 컬러강판 사업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해왔고, 그 결과 현재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후판과 함께 중국산 컬러강판 제품이 국내에 난립하며 고스란히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중국산 건축용 도금·컬러강판 수입 물량은 최근 3년간 연 76만톤(t)에서 연 102만톤(t)까지 34.2%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단가는 톤당 952달러에서 730달러로 23.3% 낮아졌다. 작년 동국씨엠의 내수 기준 도금강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4% 줄었고 컬러강판도 24% 하락했다.
지난해 중국 저가 공세와 건설 경기 침체기가 맞물리면서 국내 철강기업이 받는 피해는 극에 달했다. 철강 3사 모두 실적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영 환경을 견디지 못해 몇몇 기업은 공장 폐쇄를 결단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포스코는 지난해 1제강공장에 이어 1선재공장의 문을 닫았고,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현대제철이 가장 먼저 중국산 저가 제품에 칼을 빼들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무역위)에 중국산 저가 후판 덤핑으로 국내 산업계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제소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산과 일본산 열연강판이 비정상적으로 값싸게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는 이유로 또다시 반덤핑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무역위는 지난해 10월 초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무역위는 중국산 후판 덤핑으로 국내 산업의 피해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해 후판에 27.91~38.02%의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 판정을 내렸다. 무역위가 건의한 덤핑방지관세는 당초 업계에서 예상한 수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중국산 수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철강업계는 중국산 후판 반덤핑 관세 조치에 따라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산 후판은 국내 제품(약 90만원)보다 10만원 정도 저렴한 톤(t)당 78만5000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번 관세 조치가 실현되면 국산 후판이 중국산보다 10% 이상 값싸질 것으로 보이면서 내수 시장 회복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번 덤핑방지관세로 국내 후판 3사의 후판 판매량 확대와 후판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아져 이들 기업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며 "향후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해서 관세가 부과된다면, 해당 제품 비중이 높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실적 회복 기여도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관세 리스크까지 예고된 상황 속에서 '철강산업 살리기'에 총력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철강업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많은 타격을 입을 산업 군으로 꼽히는 만큼 내수 시장부터 살려 기초 다지기에 힘 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생산 구조에 대한 거시 분석을 통해 전략적 통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종 철강 제품부터 단계적 무역 규제를 적용해 철강업계 동반 생존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