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이요? 저도 기대가 됩니다.”
등불은 자신을 태워 남을 빛낸다고 했던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응원은 더욱 빛을 발한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를 향한 롯데그룹의 마음도 그렇다. 10년 넘게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다. 2014년 11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협회장에 오른 것이 계기가 됐다. 신 회장은 학창시절 스키 선수로 활동했을 만큼 남다른 애정을 자랑한다. 2018년 협회장직서 물러난 뒤로도 꾸준히 롯데 계열사 임원들이 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최홍훈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1월23일 취임했다. 그간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1989년 호텔롯데에 입사, 롯데월드 영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롯데월드 대표이사에 올랐다. 최 회장에게도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장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을 터. 최 회장은 “새 일을 맡게 되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운을 뗀 뒤 “그동안 협회와 롯데그룹 관계자들이 정말 열심히 해왔다.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더라.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롯데그룹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저변 확대에 앞장섰다. 그간 투자한 금액만 300억 원이 넘는다. 최 회장은 “취임 후 신동빈 회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목적이 있는 게 아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시더라”고 전했다. 최 회장이 어떤 색을 입힐지도 관심사다. 최 회장은 “나름대로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국가대표 기량 발전, 스키 문화 활성화 그리고 바른 협회 활동이다.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웃었다.
취임하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지난 2월4일 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AG) 개최지인 중국 하얼빈으로 향했다.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돌아오자마자 106회 전국동계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도로 발을 옮겼다. 각 시·도 협회장부터 선수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3월 말엔 ‘동계종목 협력회의’에도 참석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 장미란 제2차관, 7개 동계종목 단체장, 지도자 등이 모여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 현장에서 느낀 생생함, 밀라노까지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하얼빈 AG는 현장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선수단장으로, 한국 선수단 본진을 이끌었다. 최 회장은 “한국 체육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비교적 빠른 시간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많이 배웠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선수단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현장에 가 보니 선수뿐 아니라 감독, 코치, 트레이너파트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더라”고 전했다.
달콤한 성과도 곁들였다. 한국은 금메달 16개와 은메달 15개, 동메달 14개를 수확, 종합 2위에 올랐다. 예상을 훌쩍 넘어선 수치. 역대 최고 성적을 냈던 2017년 삿포로 대회(금메달 16개, 은메달 15개, 동메달 16개)에 이어 동계 AG 2회 연속 종합 2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최 회장은 “대한체육회가 목표를 3위에서 2위로 상향 조정했다. 솔직히 좀 불안하더라. 예상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따냈다. 다행이었다. 환영식까지 해주니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데에는 스키·스노보드의 활약이 큰 몫을 했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를 목에 걸었다. 이승훈(한국체대)이 한국선수로서 최초의 프리스타일 스키 AG 금메달을 따냈으며 기대주 이채운(경희대) 역시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 정상에 섰다. 최 회장은 “당시 스키·스노보드 경기가 열린 야부리는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다. 별도의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선수단 케어에 집중했다. 반응도,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다. 최 회장은 “몇몇 종목들의 경우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본다. 우리가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종목은 아무래도 스노보드 쪽이다. 월드컵, 세계선수권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협회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 한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겠다”고 덧붙였다.

◆ 불모지 넘어 강국으로, 정선알파인센터가 필요한 이유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밑바탕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스키·스노보드 불모지로 평가받는다. 기본적으로 인프라 자체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스노보드 공중 묘기를 훈련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단 한 곳도 없다”고 운을 뗀 뒤 “국가대표 선수들은 전지훈련을 간다고 해도, 이제 막 스키·스노보드에 눈을 뜨려는 어린 선수들은 접근성이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산인 정선알파인센터 존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할강 경기 등이 펼쳐졌다.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이벤트가 열리기 위해선 표고차(출발지점과 도착지점 높이 차)가 800m 이상이 돼야 한다. 한국에선 이를 충족시킬 만한 곳이 가리왕산 정도다. 경기장 건립에만 2000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이후의 과정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생태계 복원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스키장을 계속 활용할 것인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가리왕산은 산림보호구역이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원활한 대회 운영을 위해 일시 해제했다. 폐막 후 산림 생태를 복원키로 했으나,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지역사회 발전과 동계스포츠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최 회장은 “정선알파인센터는 올림픽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경기장이다. 전 세계 스키인이 주목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은 물론, 스키·스노보드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2042 동계올림픽을 강원도에서 또 한 번 유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권혁열 강원특별자치도의원은 제336회 도의회 임시회서 “올림픽시설과 도시브랜드를 활용해 2042년 동계올림픽을 강원도 일원과 강릉에 유치한다면 현안 해결과 올림픽 경제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선알파인센터 존치가 절실하다. 최 회장은 “동계올림픽을 열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 환경과 공존할 방안을 고민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진=김두홍 기자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