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지원 넘어 협업으로 …‘H-온드림’이 키운 임팩트 생태계 13년

2025-12-17

현대차 정몽구 재단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스타트업의 실패 원인은 대부분 비슷하다. 기술이 부족하거나 창업가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초기 투자를 유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필요한 자본과 정보의 연결 고리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17일 열린 ‘2025 임팩트 스타트업 데이’ 현장에서도 이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임팩트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나 기술만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단계마다 필요한 자본과 정보를 적시에 연결하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규 식스티헤르츠 대표는 “에너지 전환처럼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는 기업일수록 혼자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결국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성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이 간극을 메우는 방식으로 지난 13년간 임팩트 스타트업 육성사업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이하 H-온드림)를 운영해 왔다. 개별 기업을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펠로들 사이의 이니셔티브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 H-온드림을 거쳐 간 스타트업은 300곳이 넘는다. 펠로 기업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지원이 끝나면, 협업이 시작됐다

임팩트 생태계에서 재단의 역할은 시스템 빌더에 가깝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R&D, 사업화, 확장, 글로벌 경쟁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성장이 필요하다. 각 단계마다 요구되는 자본과 네트워크도 성격이 다르다. 기업 혼자의 힘만으로는 시장과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임팩트 스타트업 데이의 패널토론에서 정윤환 카카오 실장은 “국내 스타트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은 정보 부족”이라며 “해외 진출이나 대기업 협업 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정보가 축적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험이 공유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H-온드림은 이 문제를 지원금 확대를 넘어 플랫폼 구축으로 풀어왔다. 자본·네트워크·기업가정신 등 스타트업의 성장 요소를 분리하지 않고 한 구조 안에서 작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펠로 기업 간 업무협약(MOU) 체결 사례도 잇따른다. 누적 펠로 기업은 354곳. 77%에 이르는 생존율 덕분에 가능한 구조다. 지난해 H-온드림에 참여한 어글리랩(12기)은 한 기수 앞서 펠로기업이 된 에코넥트(11기)와 지난 3월 업무협약을 맺고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생활폐기물 수거·선별 역량을 가진 어글리랩과 폐비닐 기반 리사이클 소재를 개발·제조하는 에코넥트는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기업 폐기물을 다시 원료와 제품으로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기업 물류센터 폐비닐 선순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가정용 수거 봉투까지 재활용 소재로 전환하면서 비용 절감과 탄소 저감 효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정보 접근 플랫폼을 운영하는 루트파인더즈(12기)는 장애아동 대상 AR 재활 게임 잼잼테라퓨틱스(12기)와 장애인을 위한 AI·에이블테크 기술 교류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B2G 사업과 정부 R&D를 공동 추진하고, 각자의 전문 영역인 접근성 기술과 재활 솔루션을 결합한 서비스 고도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업 간 협업이 기획된 성과는 아니다. 최재호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은 “H-온드림은 협업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대신 기업들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맥락을 제공하고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협업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기업이 아니라 ‘필요한 기업’을 키운다

H-온드림의 또 다른 특징은 임팩트 스타트업의 기준을 명확히 재정립했다는 점이다. 재단은 임팩트 스타트업을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 아니라 시급성과 중대성이 높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단은 이 기준을 선발과 지원 전반에 적용해 왔다. 단기 성과보다 문제 해결의 지속성, 기업가정신, 확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이유다. 재단 설립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강조해 온 장기 투자와 시스템 구축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H-온드림 운영 방식은 현대차그룹이 1990년대 말부터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위해 수소산업 생태계 구축에 장기 투자하고, 40년 넘게 한국 양궁을 지원해 세계 최강으로 키운 전략과 유사하다. 성과를 서두르기보다 생태계 전반의 성숙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올해로 13년째.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H-온드림을 통해 지금까지 창출된 일자리는 6569개. 선발 기업의 누적 매출액은 1조6753억원에 이른다. 이들 기업이 유치한 투자 규모는 3779억원이다.

올해 H-온드림 13기에는 20곳 선발에 812개 기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40대1을 넘는다. 김정태 MYSC 대표는 “매년 선발하는 지원 사업에 8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지원했다는 건 이미 생태계를 이뤘다고 봐야 한다”며 “재단의 꾸준한 지원과 신뢰로 만들어낸 결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펠로 기업 상당수는 한 번의 실패나 방향 전환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재단은 방향을 지시하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시간과 다음 선택지를 제공했다. 특히 ‘펠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만난다는 점도 강점이다. 윤석원 AI웍스 대표는 “H-온드림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 중 하나가 네트워킹 기회”라며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동료 펠로들과의 교류하면서 사업적 인사이트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무성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은 “임팩트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앞으로도 단기 성과보다 구조와 기반을 남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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