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차로 약 1시간을 달리자 낯익은 한글 간판을 단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CJ제일제당이 ‘만두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 시장을 겨냥해 지바(千葉)현 기사라즈(木更津)시 연구단지에 처음으로 직접 건설한 신(新)공장이다. 총투자금액은 약 1000억원. 전자와 자동차 등 한국 기업 가운데 일본 현지에 생산 시설을 갖춘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다. 신공장은 부지만 축구장 6개 크기(4만2000㎡)로 연면적 8200㎡ 규모에 이른다.

2일 준공식이 열린 공장 곳곳엔 일본식 표현인 ‘교자’ 대신 ‘만두’라는 한국식 표현이 일본어로 적혀있었다. 이날 첫 가동에 들어간 생산 시설 안으로 들어서자 흡사 반도체 생산라인을 연상케 하는 방진복을 갖춰 입은 작업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왕만두 불량품을 검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두 빚는 과정은 한국과 동일하다. 돼지고기, 양배추 등을 선별한 뒤 ‘거품(버블)’ 세정을 한다. 세척과정을 마친 뒤엔 금속 탐지기, 엑스레이로 검사 과정을 거친다. 준비된 재료를 배합하고, 만두피를 만드는 과정까지 거치면 본격적인 왕만두 제조과정의 전반 작업이 완료된다. 일본 만두와 다르게 두부와 당면 등이 들어가는데, 이르면 내년엔 일본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 출시도 이뤄질 전망이다. 이철성 지바 신공장 공장장은 “같은 왕교자라고 해도 한국하고 다르게 형태를 변형해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모양이 나오게 공정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에 공개되는 부분은 만두를 빚는 과정과 포장 단계만이다. “몇도의 온도에서 어느 정도 쪄내고, 이를 바로 몇도에서 급속 냉동하는지는 특허받은 영업 비밀이기 때문”이다. 촬영도 불가능하다. 회사 관계자는 “기계만 봐도 어떤 기술을 사용해 만두를 제조하는지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점유율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만두 시장의 강자 아지노모토, 오사카 오쇼 브랜드를 보유한 이토안이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CJ제일제당이 일본에 출사표를 내민 것은 2003년.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불고기 양념을 앞세웠다. 식초 제품인 미초(2012년)를 먼저 내놓고, 2018년에 만두를 선보였다. 연간 1조1000억원 규모의 일본 만두 시장 공략을 진두지휘한 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이듬해 일본 기업인 교자계획을 인수하면서 4개 공장에서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생산만큼 중요한 ‘유통’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이 회장은 지난 4월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로 꼽히는 이토추상사를 직접 방문해 오카후지 마사히로(岡藤正広) 회장을 만났다. “일본에 다시 불붙은 한류 열풍은 K컬처 글로벌 확산의 결정적 기회”라는 판단이었다. 이토추상사는 최대 식품 유통사인 니혼악세스와 편의점인 패밀리마트를 보유한 유통업계의 큰손.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이날 강신호 CJ제일제당 부회장은 미야모토 슈이치(宮本秀一) 이토추상사 식품사업부문 대표와 협약식을 맺었다.

현지 생산이라는 카드로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진 CJ제일제당의 출발은 호조세다. 올 상반기 일본 시장에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28% 늘었다. 일본 시장에 거는 기대도 크다. 강 부회장은 이날 준공식에서 “지바 공장은 일본 사업의 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며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 영토 확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 유치를 하게 된 지바현 구마가이 도시히토(熊谷俊人) 지사는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신공장은 양배추 등 현산(県産) 야채를 활용하고 지역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장 견학 등 지역 공헌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며 “지바현도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