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엔지니어로 무대 뒤에서 조명을 밝히고, 음향 장비를 조작하던 정우용(52) 씨. 매일매일 열리는 공연을 관리하며 관객들의 기대를 맞추는 데는 익숙했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랬던 그는 2015년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마흔둘이라는 나이에 청소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청소업은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인식이 좋지 않고 힘든 일이라 해도 무슨 상관이랴. 남의 눈길보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찾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청소업 10년 차를 맞은 그는 누군가는 외면하던 청소업으로 전직한 후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으며, 오히려 지금의 삶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라이프점프는 “‘인생 2막’ 전직을 통해 새로운 직업이자 지속 가능한 삶을 찾았다”고 확신에 차 말하는 정우용 에이젯클린 대표를 만났다.
정 씨는 20년 전 서울 종로구의 어느 호텔에서 소극장 담당자로 일했다. 기획과 홍보, 조명과 음향 관리, 대관, 컨설팅 등 소극장 운영을 홀로 도맡았다. 업계 특성상 주말에 더 바빴고, 유일한 휴일인 월요일에도 각종 장비 정비나 행사 준비 등으로 출근하는 날이 잦았다. 자연히 개인 시간은 사라졌고, 저녁밥 한 끼를 같이 먹기 어려울 정도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사치가 됐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쌓이던 차에 공연계에 닥친 위기로 그의 고민은 빠르게 현실이 됐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며 예약된 1년 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2015년에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가 터지며 극장을 찾는 관객이 급감했다. 연이어 공연계가 직격탄을 맞자 호텔은 결국 소극장 운영을 접기로 했다.
“회사에서 소극장을 없앤다면서 퇴사할지, 시설보수 팀으로 갈지 선택하라더군요. 그때가 제 나이 마흔이었어요. 저도 살아야 하니까 시설보수로 갔죠.”
음향 회사나 행사 기획사들이 문을 많이 닫으면서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8년동안 맡았던 소극장 운영 업무를 접고 생경한 시설보수 일을 택했지만 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낮은 급여와 늘어난 업무, 불규칙한 생활은 그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는 전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애도 커가는데 함께할 시간은 없고, 나이는 많아지는데 급여는 안 오르고…. 마음의 상처가 좀 많았어요.”
괴로운 마음에 퇴근하고서는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청계천에 앉아 술을 마셨다. 매일 청계천에서 앉아 홀로 술잔을 채우는 그를 본 단골 중국집의 사장님이 “청승맞게 길거리에서 이러지 말고, 우리 가게로 오게”라고 말했다. 그렇게 퇴근하면 중국집을 찾아 6개월간 인생 2막을 고민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도 찾아보고,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날 고민하던 그에게 중국집의 사모가 조심스럽게 “내 동생 부부가 청소업을 하니 한번 따라가서 보기나 해라”고 권유했다. 절박했던 정 씨는 바로 휴가를 내고 현장을 체험했다. 그리고 그 이틀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수입도 제 월급보다 괜찮았고, 무엇보다 일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 자기 시간이 있다는 것에서 확 끌렸습니다.”
그는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청소업에 뛰어들어 2015년 에이젯클린이라는 사업체를 세웠다. 목표는 단순했다. ‘직장 다닐 때보다 월 100만 원만 더 벌자.’ 그는 식당과 카페, 빌라 등을 다니며 직접 만든 전단을 돌리고 일거리를 따냈다. 사업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창업하며 세운 목표를 6개월 만에 달성했다. 창업 3년 차인 2018년부터 이듬해까지는 혼자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일이 늘어나 직원을 두어야 했을 정도였다.
“성실하게 일하면 연금같이 나오는 월급이 장점”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성실과 책임감이에요. 청소를 맡기는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함께 갈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번 신뢰를 쌓으면 연금처럼 수입이 고정돼죠.”
일정 수준의 청결도를 유지하면 계약이 끊길 일 없이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계단 청소를 맡기던 건물주가 세입자가 나가는 방을 청소해달라며 입주 청소도 맡기거나, 성실성이 입증되면 주변 건물의 건물주도 ‘우리 건물도 청소 좀 해달라’며 제안을 해온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강한 약품 사용과 동물 사체나 불쾌한 오염물 처리, 새벽 출근 등 육체적 고됨은 피할 수 없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저는 10년 차를 맞았어도 아직 일을 하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려요. 또 약품을 쓰니까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죠.”
밤낮도 바뀐다. 사무실이나 병원, 카페 등을 청소하는 업자는 이용자가 적은 오후 7, 8시부터 청소하러 다니기 시작해 새벽 6, 7시에 일과가 끝난다. 계단 청소나 이사 입주 청소를 하더라도 새벽 4, 5시에는 일어나 현장에 6시까지 도착해 인적이 드물 때 청소를 마쳐야 한다.
그는 “청소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약 60명의 후배를 양성했지만 실제로 그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며 자립한 이는 13명뿐. 코칭을 받은 20%만이 살아남은 셈이다. 그리고 그중 2명만이 그가 조언하는 가이드라인대로 성실히 수행하고 있단다. 몸이 고되기에 입문하는 것을 넘어 ‘정말’ 성공적으로 청소업을 유지하는 이는 3%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창업 비용 적고, 사회 경험 있는 중장년에게 ‘강추’
그럼에도 그는 청소업을 중장년층에게 적합한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우선 창업 비용이 낮아 창업 리스크가 적다는 것.
“손걸레와 밀대, 장갑, 청소기 등 기본 장비는 30만 원이면 되고, 몸을 아끼기 위해 좋은 장비를 사도 300만 원이면 충분하죠. 자차만 있으면 가진 자본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청소업도 외벽 청소, 물탱크 청소, 침대 케어, 유리창 등으로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어 본인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다. 청소업에 관한 인식도 나아지고 있으며 초기 투자 비용 대비 수익 달성도 빠르게 해낼 수 있다. 월 200만 원은 3~6개월 만에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퇴직 후 청소를 하려고 한다, 가정의 경제에 더 도움을 주기 위해 청소하려 한다’ 등 중장년은 나만의 스토리가 있으니 영업도 더 쉬워요. 같은 청소업계 사람이나 건물주가 도와주려 하는 경향이 있죠. 일 맡기는 사람도 대부분 40~60세대라, 비슷한 연령에게 더 신뢰를 보이죠.”
중장년층이 청소업에 유리한 이유도 또 있다. 청소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일이라 중장년이 사회생활로 쌓은 경륜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일에서 청소 기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10~15%입니다.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해요. 중장년은 사회경험이 많아 갈등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그밖에도 창업에는 세무, 마케팅 등 여러 능력이 필요해 중장년이 유리하죠.”
청년층은 간혹 건물주와 갈등을 빚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휘청이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청소에서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고 할 때 중장년은 사과하고 추가 청소를 제안한다면 청년들은 사회 경험이 적다 보니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융통성 있게 중재하지 못해서 건물주와 갈등을 빚는 때가 많아요.”
“청소업으로 인생 2막의 직업과 삶 찾았어요”
그의 인생 2막 개척기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은퇴한 중장년이나 현재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는 이들이 그의 블로그를 보고 찾아온다.
“지난해에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왜 사장님은 이렇게까지 멘토 서비스를 해주냐’였어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봤죠. 입문자들을 만나면서 그 해답을 찾았어요. 제 삶의 보람 때문이죠.”
이런저런 조언을 주고, 그대로 실행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큼 뿌듯한 것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청소업 창업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여유를 되찾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지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은 것이 큰 수확이라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면 전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도 크단다.
‘인생 1막과 비교하면 어떠냐, 만족스러운 전직인 것 같으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말 행복해요, 정말 행복해요”라고 반복해 말했다. 이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날은 먼 기억이다. 누군가는 화려한 인생 2막을 꿈꾸지만 성실하게 살아낸 하루하루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는 오늘도 동이 트기전 빗자루를 들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