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는가? 좀비, 좀비, 좀비…”
며칠 전 헌법재판소 최후변론을 했던 윤석열을 떠올렸겠지만, 사실은 30여년 전 아일랜드 록그룹 크랜베리스가 불렀던 ‘좀비’의 후렴구이다. 종교 갈등의 틈새를 비집고 폭탄과 총을 동원한 테러가 자행되던 아일랜드의 안타까운 역사를 노래했다. 마침내 1998년 4월10일 벨파스트 평화협정으로 북아일랜드 사태는 막을 내렸지만 1969년부터 30년 동안 이어져온 피의 분쟁으로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곡 ‘좀비’는 1998년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 초청되어 연주되었다.
며칠 전 보수논객 정규재씨는 그의 페이스북에서 지난 3개월 동안 우리 사회가 마치 “거대한 미치광이들의 행진 같은, 아니 좀비들의 발광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대통령 한 사람에서 시작한 좀비 현상은 계엄을 거치면서 사회 전체를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라는 거대한 분열 구도로 나누어놓았다. 문제는 이 현상이 헌재의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에도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 좀비화 현상의 본질은 시민들이 모종의 편향확증성에 현혹되고 무비판적으로 코드화된 행동을 반복해간다는 것인데, 우리가 서부지법 난동에서 보았듯이 편향된 확증성은 정치 갈등을 넘어 폭력과 파괴로 나아간다. 그 안에서 사회적 신뢰는 추락한다.
혐오 정치가 퍼지는 방식은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양상과 비슷하다. 정치 좀비 바이러스는 순진한 시민을 숙주로 해 스스로를 증식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 그 감염 경로를 차단했던 것처럼, 좀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일단은 왜곡된 정보가 전파되고 학습되는 경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당성의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의 전파를 제한하고 소통을 검열하는 것은 자칫 개인 사생활 검열과 언론통제라는 또 다른 민주주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지난번 더불어민주당의 ‘카톡 검열’ 논쟁이 빠졌던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정치 혐오 바이러스 전파를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이다. 백신이다. 정보가 오염되고 혐오로 덧칠되더라도 그것을 학습하는 개인들이 ‘비판적 학습’이라는 백신을 미리 맞는다면 비록 감염되더라도 결코 중증에 이르지 않는다. 원래 생물학적인 백신도 학습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몸세포에게 병원성 바이러스를 미리 학습시켜 실제 침투에 대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혐오 좀비 바이러스의 경우에도 민주주의 백신을 통해 인간의 사고력을 마비시키는 그 정보를 미리 학습하고 분석하며,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기초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백신은 너무 순했고 약발도 약했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본 것처럼 한 국가의 헌법과 법률이그리 완벽한 것이 아니다. 많은 장면에서 모순과 법률 미비, 그리고 교묘한 이단 해석이 가능하다. 게다가 반헌법적 상황은 예측을 한참 벗어나며, 정상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양상을 만든다. 좀비 같다.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보다 치밀하고 현장적이며 엄정한 논리 속에서 극우 혹은 극좌의 혐오주의와 폭력성을 이겨낼 수 있는 사고력 학습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민주주의 교육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선의 방어책이라는 각오로 전 국민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시도교육감은 학교에서 민주주의 특별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신속히 설치하고, 학생들이 당장 대선 이후에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분석·토의할 수 있도록 학습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또 윤석열 정권 들어 뒷걸음치고 있는 민주시민 교육을 큰 틀에서 부활시키고, 그 안에서 더 세밀하고 치열하며 현장 중심적인 민주시민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정치가 더 이상 단순 투표행위에 머물지 않고 수준 높은 교양과 치밀한 논리, 그리고 증거와 합리적 판단이 만나는 시민정치공론장을 통해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시민대학, 평생학습관, 도서관 등이 단순히 강연을 청취하는 장소가 아니라 과감한 주장들이 제시되고 시민들의 치열한 공방이 허용됨으로써 사회적 담론의 ‘백신’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열려야 한다. 이러한 교육에는 반드시 시민교육 전문가가 중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 합리적 토론에 직접 참여해보는 것만큼 좋은 민주주의 백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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