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기]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

2025-05-29

어버이날 편지를 받았다. 학교에서 만들어오는 공식적인 편지라도 매번 기분이 좋다. 길게 적은 큰애 편지에 ‘계속 안아줘서 고마워요’, ‘엄마 박사 공부하는 거 나쁘게 말해서 미안해요’ 라는 두 문장이 뭉클했다. 작은애는 편지 2개를 주었다. 하나는 짧고 굵게 적은 공식적인 편지, 다른 하나는 솜씨를 발휘해 만든 입체 카드였다. 카드를 열면 카네이션이 튀어나온다. 두고두고 보려고 벽에 붙여 놨다.

작은애가 퀴즈처럼 내게 물었다. “엄마, 내가 어버이날 카드에 절대 안 적는 말이 뭔지 아세요?”, “정답은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이에요.” 나도 알고 있다. 실수로라도 적을 법한데 여태껏 적은 적이 없다. 작은애가 철자와 맞춤법을 틀려가며 적었던 때부터 그랬다. 막대사람처럼 그린 엄마 옆에 하트가 10개 넘어도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언니가 편지에 꼬박꼬박 ‘낳아줘서 고맙다’고 적을 때에도 작은애는 물끄러미 보기만 할 뿐 따라 적지 않았다.

내가 되물었다. “그럼 키워줘서 고맙다고 적는 건 어때?” 작은애 대답이 걸작이다. “아직 다 키워준 게 아니라서 그건 좀 그래요.”

종합병원에 가게 되면 임산부,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눈길이 머무는 작은애를 나는 안다. 괜히 그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질문도 많아진다. 2년 전만 해도 “낳아준 엄마가 날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근데 날 데려가는 건 안 돼요. 그냥 나랑 놀고 자기집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말했던 작은애가 낳아준 엄마랑 살아보고 싶어한다. 그 사이에 작은애 마음이 커졌다.

작은애가 낳아준 엄마에 대해 물을 때가 있다. “낳아준 엄마는 이제 몇 살 됐어요?”, “낳아준 엄마가 내 생일을 기억할까요?”, “아기를 키울 준비가 안 됐는데 왜 날 가진 거에요?”, “피임을 했는데도 내가 생긴 걸까요?”, “둘이 서로 좋아해서 내가 생긴 건 맞아요?”, “서로 좋아해서 내가 생긴 건데 왜 결혼을 안 했대요?”, “나는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어요?”, “낳아준 엄마는 어디 살아요?”, “낳아준 엄마가 결혼 했을까요?”, “나한테 동생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등등.

최근 작은애 정밀검사가 필요해서 오랜만에 입원을 했다. 병원에서 산책하다가 작은애한테 물었다. “나중에 낳아준 엄마 만나면 소아암 겪었던 거 말할 거야?” 작은애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어떤 날은 “우리 반에 입양된 친구가 아무도 없는데 나만 입양이어서 싫어요” 말하기도 한다. 한번씩 작은애가 친구에게 자신은 엄마가 두 명이라고 말한다는 제보가 내 귀에 들린다. 상대에게 마음이 열리면 비밀을 공유하고 싶은 그런 마음인 걸까? 나는 짐작만 할 뿐 헤아려지지 않는 마음이다.

언젠가 낳아준 엄마를 만나게 되면 작은애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비로소 할지도 모르겠다.

김윤경 글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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