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웹툰이 나오기까지에는 생각보다 아주 여러 단계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먼저, 좋은 스토리가 있어야겠죠. 이 스토리를 한 회분의 콘티로 만듭니다. 칸을 나누고, 각 칸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갈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그려 넣는 것이죠. 이후에는 스케치가 이뤄지고, 이를 정교한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선화 작업이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채색과 보정을 하죠.
보는 사람은 한 편의 웹툰을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면서 수분내로 쉽게 감상하지만, 만드는 작가들의 노동량은 만만치 않습니다. 저 복잡한 과정을 한 회에 50컷에서 많게는 100여 컷씩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작가들은 상당수가 목과 손목,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는 직업병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
그런 면에서, 웹툰에 접목되는 AI 기술에 여러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접목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작가나 독자도 있지만, 작가의 작품에 대한 권리는 보호하면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환영받을 일이니까요. 작품 제작에서 유통까지, 웹툰이란 산업에 어떠한 AI 기술이 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웹툰 제작 – 선화
스케치와 선화는 웹툰 제작에서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작가가각 인물과 배경을 어떻게 그려넣느냐에 따라 웹툰이 주는 느낌이 아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원하는 모양대로, 정확하게 선을 그려줘야 나중에 채색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작가 고유의 그림체나 연출력도 여기서 결정이 되기 때문에, 쉽사리 다른 이에게 맡기기도 어렵죠. 작가는 노동의 상당 부분을 여기에 할당합니다.
라이언로켓, 오노마AI(가나다 순)와 같은 스타트업이 선화에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는, 두 회사가 하려는 일이 같습니다. 자체 생성형 AI 모델을 만들어서 작가의 화풍을 배웁니다. 정승환 라이언로켓 대표, 송민 오노마AI 대표(두 회사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곧 인터뷰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에 문의를 한 결과, 두 회사는 “작가의 그림 5~10장 정도를 AI에 학습시키는” 방법으로, 각 작가에 맞춤한 AI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죠.
그러니까, AI가 작가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고, 개별 작가마다 자기 그림을 똑같이 그려낼 수 있는 보조작가 하나씩을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콘티나 스케치를 보고는 AI가 선화 작업을 대신 하게 되는 것인데요. 예전에는 AI가 일관성있게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려웠죠. 첫번째 컷과 다다음 컷의 주인공 얼굴이 달라지면 그 만화를 누가 보겠습니까. 이들 스타트업은 개별 작가의 그림을 AI 모델에 학습시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AI 기술의 정확도를 올리고 있는 단계입니다. 일부 웹툰에는 AI 보조작가가 이미 활동 중이기도 하고요.
웹툰 제작 – 채색
이미 자동 채색툴 ‘AI 페인터’가 나와 있습니다. 네이버가 만든 것인데요. 2021년 10월 베타 서비스로 먼저 선보였습니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스케치 맥락과 웹툰에 맞는 자연스러운 채색을 목표로 합니다. 창작자가 색을 선택하고 원하는 곳에 터치하면 인공지능(AI)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자동으로 색을 입혀주는 식입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기존과 달리 몇 번의 터치만으로 채색이 가능해지면서, 채색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을 줄여 창작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네이버 측은 강조합니다. 채색 후에는 PSD파일로 저장할 수 있어서 포토샵에서 채색 이후 작업을 이어서 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기술이 들어갔을까요?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한 1500여 작품의 약 12만 회차 분에서 30만장의 이미지 데이터를 추출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배경 등 이미지 속 각 영역에 대한 특징 및 다양한 채색 스타일을 딥러닝으로 학습시켰습니다. 특히, 웹툰 이미지 학습을 통해 웹툰 채색에 특화되도록 개발해 개성이 강한 그림체도 깔끔하고 뚜렷하게 웹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강점 삼았습니다. 서충현 네이버웹툰 AI 모델링 리더는 “완성된 기술이 실제 창작 과정에 쓰일 경우 전체 작업 시간을 30%에서 최대 50%까지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웹툰 감상 – 추천
각 개인이 선호할만한 웹툰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는 플랫폼에서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있는데 네이버의 것은 이름이 ‘AI 큐레이터’이고, 카카오의 것은 ‘헬릭스 푸쉬’입니다.
네이버웹툰이 딥러닝, 머신러닝을 활용해 자체 개발한 추천 기술 ‘AI 큐레이터’는 2023년 3월 부터 네이버시리즈에 적용해 이후 네이버웹툰에도 들어갔습니다. 어떤 작품과 유사한 작품들을 추천해주는 방식(ex. 화산귀환을 재미있게 본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과,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추천해주는 방식(ex. ㅇㅇ님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신작들 중 이용자가 선호할 만한 작품을 추천해주거나 혹은 다수의 이용자에게 높은 평점을 받는 작품들을 랭킹화하여 추천해주는 등으로 작동합니다. 네이버의 2023년 2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AI 큐레이터 적용 후 추천 작품 클릭 수는 이전보다 30% 이상 증가했고, 미국에서는 유료 이용자당 결제액(ARPPU·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이 20%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헬릭스 푸쉬도 유사합니다. 이용자의 취향,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해 스마트폰 모바일 ‘푸시’ 알림 형태로 개인 맞춤형 웹툰/ 웹소설 IP를 추천하고 작품 감상 무료 이용권을 함께 제공합니다. AI가 원하는 작품을 정교하게 타깃팅해 추천한 결과물인 만큼, 이용자 취향에 맞아 작품 열람으로 이어질 확률 역시 높다는 것이죠. 카카오 측은 “이용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작품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줄이고, 원하는 작품을 손쉽게 발굴할 수 있게됐다”고 기술의 의의를 평가합니다.
웹툰 – 불법 복제 단속
웹툰 산업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수시로 만들어지는 불법 복제 사이트입니다. 유료 콘텐츠를 무단으로 퍼날라가 유통하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를 크게 위축시킵니다. 다시 말해,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봤자 사람들이 불법으로 퍼가 무단으로 본다면, 이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낼 동인이 크게 떨어지겠죠. 그래서 각 플랫폼들은 불법 복제를 막아낼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국내외 불법 복제물 추적에 활용하고 있는 네이버웹툰의 ‘툰레이더(Toon Radar)’도 그런 기술 중 하나입니다. 2018년 6월 말에는 ‘툰레이더’에 이미지 추적을 위한 보는 능력(컴퓨터 비전)을 갖춘 인공지능을 적용, ‘툰레이더 AI’로 업그레이드해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불법 웹툰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업로드 된 불법 웹툰 이미지에서 유출자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 과정을 대폭 줄이고 모니터링 자동화와 ‘툰레이더 AI’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인데요.
툰레이더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최신 유료 회차가 불법 공유 사이트에 올라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지연시킨 것입니다. ‘미리보기’ 기능으로 제공되는 최신 유료 회차는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전환되기 때문에 불법으로 공유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핵심 요건이죠. 국내 불법사이트의 경우 과거 만 하루도 안되어 불법으로 유통되었으나 최근 평균 3~4주까지 그 기간을 지연시켰다고 네이버웹툰 측은 말합니다.
2019년 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웹툰 불법유출 예측 시스템’을 툰레이더에 추가로 도입했습니다. 데이터 분석 및 머신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이용자의 불법 공유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해 불법 복제 및 공유 행위가 의심되는 이용자를 사전에 차단하는 기술이죠. 완전 자동화를 위한 시스템 업그레이드 및 개인 식별을 위한 기술 고도화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