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깨어남의 순간

2025-03-04

1917년에 제작된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첫 울음’은 갓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을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다. 조각가는 신생아의 얼굴을 기하학적인 타원형으로 표현하고, 입이 크게 벌어진 모습을 통해 울음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단순한 신체 표현을 넘어, 삶이 시작되는 근원적인 순간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브랑쿠시는 전통적인 사실주의적 조각에서 벗어나, 형태를 본질적으로 압축하고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 조각가다. 브랑쿠시는 조각을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첫 울음’ 역시 이러한 예술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탄생’이라는 개념이다. 신생아의 첫 울음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과 처음으로 맺는 관계이자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는 봄이라는 계절이 가진 상징성과도 연결된다. 첫 울음이 삶의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듯, 봄 역시 생명과 변화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봄은 자연이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계절이며, 생명이 움트고 성장과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브랑쿠시가 ‘첫 울음’에서 세부적인 형상을 생략하고 본질만을 남긴 것처럼, 봄 역시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지는 시간이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피어나는 새싹처럼 아기의 울음 역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순간이며, 이는 생명의 순환과 변화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망설이는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주저하며 익숙함 속에 머물기를 원한다. 하지만 변화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고요한 과정이 아니다. 꽃은 봄이 온다고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 땅을 뚫고 올라오는 세찬 순간을 거쳐 피어오른다. 새싹이 단단한 흙을 헤치고 올라오는 순간은 조용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앞두고 우리는 겁이 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으며, 두려울 수도 있다.

삶의 순환 속에서 매 순간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첫 울음’은 말한다. 탄생은 소리 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변화는 강렬한 깨어남의 순간을 동반한다고.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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