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호(39)는 여름이 지나갈 즈음 마음 속에 은퇴를 떠올렸다. 불혹이 된 박병호의 2025년은 매우 저조했다. 삼성은 젊은 장타자들이 주축으로 날개를 펴기 시작한 팀이지만,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박병호에게는 어쨌든 현역으로 계속 뛰기를 시도해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박병호의 마음은 굳어졌다. 확실하게, 자신의 의지로 현역 생활의 끝을 결정했다.
소속 팀 삼성은 격렬한 순위싸움 중이었다. 가을야구에 나가는 데 성공해 또 접전을 치렀다. 오승환이 은퇴투어를 하던 시즌 말미, 마지막을 이미 결정해놓은 박병호는 조용히 마무리했다. 가을야구 시작 전, 구단에만 뜻을 전달했고 격렬했던 삼성의 가을야구에서 대타로 뛰고 벤치에서 격려하며 그라운드의 마지막을 느꼈다.
지난 3일 삼성이 박병호의 은퇴를 발표하자 많은 이들이 박병호도 자연스레 방송가로 이동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이미 코치 데뷔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코치 박병호로 새로 출발하는 둥지는 그가 홈런왕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팀 키움이다. 키움은 4일 박병호를 잔류군(3군) 선임코치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박병호는 선수 생활 중에도 늘 “지도자의 꿈이 있다”고 말해왔다. 자신은 언변도 좋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차근차근 배워서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자신이 힘겨운 무명의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고교 거포였던 박병호는 2005년 1차 지명으로 LG에 화제 속에 입단했지만 막상 프로에서 터지지 않아 2군에서 오랜 시간을 뛰었다. 2011년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현 키움)으로 갔고 4번 타자를 맡았다. 환경이 바뀌자 잠재력이 터져 2012년 홈런왕에 오르면서 이후 KBO리그 홈런왕 역사를 바꾼 주인공이 됐다. 방황의 시간이 길었던 박병호는 기술적으로도, 멘털적으로도 경험한 바가 많고 여러 지도자들의 다양한 코칭을 경험했다. ‘좋은 코치’가 되는 것은 박병호의 은퇴후 첫 번째 목표였다.
그 무대는 키움이다. 박병호는 미국프로야구를 거쳐 KBO리그에 복귀한 뒤에도 키움에서 2021년까지 뛰었다. 그 뒤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으나 키움에 남지 못하고 KT로 이적한 뒤 삼성에서 은퇴하게 됐다.
당시 박병호를 잡지 못한 키움은 이번에 박병호를 FA 계약으로 영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박병호는 이미 은퇴를 결심했고, 지난주 그 소식을 접한 키움은 코치직을 제안해 박병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이미 1·2군 코치진 조각을 마친 상태에서 키움은 잔류군에 선임코치직을 만들었다. 잔류군은 사실상 육성의 첫 단계다.
키움 구단은 “지난 번 FA 때 보내야 했던 부분도 있어 마지막은 함께 하자고 제의할 계획이었는데 은퇴한다고 했다. 설득해서 듣는 선수도 아니고, 그래서 4~5일 전 코치직을 제안했다. 잔류군 선수들은 전부 어리다. 박병호 같은 레전드가 코치로서 거기서 지도한다면 훈련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KBO리그 각 구단은 현재 코치 구인난에 시름하고 있다. 현역 코치이던 레전드 이종범이 시즌 중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로 이동한 충격도 몇 달 전 겪었다. 시대를 주름잡은 선수 출신들은 전부 방송 해설위원 혹은 예능프로그램으로 몰려가 있다. 코치들은 선수들에 비해 훨씬 적은 보수와 강도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팀 성적에 따라 하루아침에 실직하기도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은퇴 선수들이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이다. 높은 연봉을 받던 선수일수록 고생만 하고 보수는 낮은 코치직을 외면한다. 방송사들은 이 틈을 노리고 베테랑 선수에게는 은퇴 발표하기도 전부터 경쟁하듯 영입 제의를 한다.
박병호는 프로야구 최다 홈런왕(6회)이며 유일한 2년 연속 50홈런 기록을 가졌다. KBO리그 역사에 남을 레전드 거포다. 그러나 스타들이 은퇴와 동시에 모두 등돌린 그라운드를 박병호는 유일한 선택지로 삼았다. 박병호 정도의 특급 스타가 이렇게 은퇴와 함께 코치로 직행한 사례 자체가 최근에는 없었다.
은퇴 발표 이후 박병호는 기자와 통화에서 “선수로서는 올해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고 시즌 중 현실을 많이 느꼈다. 은퇴 이후에 해보고 싶은 일은 지도자 외에는 없었다. 이제 키움을 새 직장으로 생각하고 새 경력을 쌓아야 한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또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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