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예쁨' 박래빗 시인에게

박래빗 시인 건강하게 잘 있지요? 살다 보면 불현듯 폭우가 쏟아지고 사방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와이퍼로 물방울 밀어내듯 가볍게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에게 와줄 문장을 기다리는 박래빗 시인, 그에 대한 기록 『i의 예쁨』을 읽고 덩달아 나는 환해집니다.
글에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지요. 타자의 삶이나 상황맥락을 빌려 시침 떼 보지만 그 배면은 자신일 것이어서 쑥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래빗은 내포하고 있는 자신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타자의 억측을 무너뜨리고 순수함은 오히려 정밀해졌습니다. 형식은 신선했으며 나 또한 내용이 닿는 그곳을 가본 적도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자신’을 도구이자 수단으로 사용하는 재기발랄한 책 『i의 예쁨』은 박래빗 시인의 유년에서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시절이 날것으로 가득하더군요. 장르의 경직성을 털고 시와 수필, 경험과 환상, 유쾌한 수다와 진중한 철학적 성찰로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래빗의 문학을 사랑하고 예뻐하는 마음이 울울창창했습니다. 책에서 밝혔듯 “다음날이 오면 또 무슨 문장과 글이 나에게 올지 행복해하며 궁금해하는 날들”로 책의 모든 성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꾸밈없이 써 내려간 글, 때론 나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혼자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나이며, 나,인 것이 좋”은 박래빗 시인의 솔직함과 다소 과잉된 자의식마저 신선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집요한 목적성이 오히려 목적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인 박래빗 시인은 목적을 획득한 거지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욕망하는 ‘목적성’ 없이 문학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소년기 감수성 도처엔 천진함이, 굳이 세공 하려 들지 않은 원석의 묘미로 가득했지요.
래빗은 체력적 한계와 병약함으로 유년기를 보냈더군요.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물리화학적 처방이 아닌 종교적인 포용과 엉뚱함과 재기발랄함과 세상 한복판에서 살짝 벗어난 비정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해 볼밖에요.
고백하건대 래빗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박래빗 시인과 나는 운명의 실타래 한 올쯤 얽혀있지요. 래빗의 사생활에 개입된 적 있으며 공유한 시절을 추억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니 더욱 좋았습니다. 박래빗 시인의 사적인 경험과 감각들이 궁극에는 보편적인 삶의 진리에 다다르게 된다는 점도 밝혀두고 싶군요.
래빗은 글을 맺으며 벌써 글을 쓰는 시간이 그리워진다고 썼더군요. 래빗의 그 ‘시간’을 응원합니다. 최근 고도의 해석 기술을 장착해야 풀리는 난해한 책들 속에서 모처럼 쉽고 천진한 성장 시 혹은 소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의 일대기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근원이 무얼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시 산문집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긍정의 언어들, 위태로울 만큼 천진하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래빗의 내면이 상처받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관계가 절대적이지 않는 부박한 시대, ‘오롯한 나’가 존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래빗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로고테라피 대명사 빅터 프랭클처럼 앞으로도 세상이 캄캄해지거나 고통스러울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요. 선결과제는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이고 ‘패잔병’이고 필멸로 향하는 ‘환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거지요. 특히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어요. 래빗 덕분에 글을 쓸 때는 뭐든 써도 된다는 것, 자신을 보여주든 그 반대 값이든 ‘무엇’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써간다는 것을 새삼 알았어요. 개인에서 시작되는 기본값을 자신 감각대로 쓰다 보면 사회병리, 금기, 고통 등은 휘발되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메시지, 잘 받았어요.
박래빗 시인이 표출하는 에너지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잘 지내요.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요.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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