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푸틴이 소환한 나폴레옹

2025-03-10

프랑스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때는 1804년 즉위한 나폴레옹 1세 황제 재임 시절이다. 오늘날의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들이 모두 나폴레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섬나라 영국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지닌 러시아 정도가 프랑스의 대항마로 꼽혔다. 이에 나폴레옹은 영국을 고립시킬 목적에서 영국과 유럽 대륙 국가들 간의 교역을 금지하는 이른바 ‘대륙봉쇄령’을 내린다. 하지만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 봉쇄는 프랑스의 국력에 부치는 일이었다고 하겠다.

당장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공공연히 거래를 했다. 격분한 나폴레옹은 1812년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감행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을 향해 봉쇄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으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미처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매서운 겨울 추위에 프랑스군은 맥을 못 추고 고전했다. 결국 러시아에서 참패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그는 영국 땅인 대서양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21년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유럽엔 비상이 걸렸다.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 체제 아래에서 ‘미국 핵우산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출범을 계기로 안보를 사실상 미국에 의존해 온 것이 현실이다. 이에 서방의 또 다른 핵무기 보유국인 프랑스가 러시아의 핵 위협에 맞서 유럽 동맹국을 보호할 핵우산 제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독일, 폴란드 등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자 프랑스보다 훨씬 강한 핵 전력을 지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나폴레옹의 최후를 잊었느냐”며 프랑스를 비웃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뒤 프랑스 국력이 쪼그라든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발끈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푸틴을 겨냥해 “제국주의자 푸틴이 세계 역사를 다시 쓰려 한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가 어쩌다가 약육강식의 나폴레옹 시대가 거론될 만큼 퇴보했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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