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육군본부(육본)와 육군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가 합동참모본부 등이 전파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 문건을 계엄 해제 직후 파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 명령이 어디까지 하달됐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증거를 없애버린 것이다. 계엄 가담 사실을 감추려고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육본과 지작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육본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오전 0시58분에 합동참모본부로부터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팩스로 받았다. 육본은 이 문건을 이날 오전 7시쯤 파기했다고 보고했다. 지작사도 같은 날 오전 0시11분에 계엄사령부로부터 포고령을 팩스로 받은 다음 이날 오전 5시쯤 파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본과 지작사는 파기 이유에 대해 “상황이 종료됐기 때문”이라고 추 의원실에 말했다. 이들은 각자 자체 판단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육본은 이번 비상계엄을 사실상 주도한 주체로 지목돼 있다. 계엄 당시 국회 장악 시도에 핵심 역할을 한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관할한다. 육본 지휘관이었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은 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지작사는 전방부대 전체를 통솔하는 사령부다. 강호필 지작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선포를 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4일 오전 3시쯤 방첩·특전·수방사령관과 함께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재하는 화상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지작사도 계엄에 투입될 예정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는다. 강 사령관을 뺀 다른 사령관 3명은 모두 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계엄 당시 국회 장악 작전을 수행하고 계엄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군 주체들이 계엄 당일 포고령을 자체 폐기한 것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정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 의원실에 따르면 포고령을 육본 등에 전파한 합참은 포고령 원본을 작성한 주체나 포고령 발송 여부 및 이유 등에 대해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전 총장이 직접 서명한 포고령 원본은 검찰 12·3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확보한 상태다.
추 의원은 “아직도 내란수괴 윤석열은 체포되지 않았고 군 내부의 조직적 증거 인멸도 우려된다”며 “조속히 진실을 밝히고 내란의 위험을 완전히 종식시켜 국민의 불안과 국가적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