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미술 시장이 뜨겁다. 국민들의 소득 향상으로 문화 향유 욕구가 커지면서 미술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호주 출신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개인전에는 무려 52만 명이 다녀갔다. 8월 말 기준 국립중앙박물관의 누적 관람객은 433만 명에 달하며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간 500만 명 돌파가 기대된다.
이처럼 전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창작 활동을 촉진하며 미술품 거래로 이어져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미술품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의 삶 속에 파고드는 문화 콘텐츠이자 투자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미술시장조사 2024’에 따르면 국내 미술 시장 거래 작품 수는 연간 5만 건, 거래 금액은 약 6900억 원 규모다.
그러나 눈부신 성장세 뒤에는 고질적인 ‘약한 고리’가 존재한다. 바로 위작 문제다. 천경자·박수근·이우환 등 거장들의 작품조차 위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사건은 한국 미술계의 신뢰를 뒤흔든 대표적 사건이었다. 천 화백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미인도를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도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진품이라 하고,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는 위작 판단을 내렸다. 미술품의 진위 논란이 미술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선의의 소비자에게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미술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미술진흥법’을 통해 작품 정보 및 보증 내용이 포함된 진품증명서를 제공하도록 했다. 하지만 위·변조에 취약한 문제가 있다. 법과 규제만으로는 교묘하게 진화하는 위작 유통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운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하나의 대안이 ‘디지털 워터마크’ 기술이다. 조폐공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보안 패턴 삽입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이미지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암호화된 보안 패턴을 새겨놓고, 전용 앱으로 이를 스캔해 정품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영화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 작가가 이 기술을 최초로 적용한 판화 작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다만 디지털 워터마크는 디지털 방식으로 만든 작품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조폐공사는 기존 캔버스 등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원작에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위·변조 방지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특수 제작한 안료를 투입한 유화물감, 위조방지 RFID태그를 부착한 캔버스, 광결정 필름을 작품에 활용하는 방법 등이다. 11월에 개최되는 ‘인천 아트쇼’에서 디지털 워터마크를 포함한 다양한 미술품의 위·변조 방지 기술을 국민들에게 직접 선보일 계획이다.
미술 시장은 이제 막 잠재력을 꽃피우기 시작한 유망한 산업이다. 그러나 위작이라는 약한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성장 기반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정부는 제도 개선 및 기술적 대안을 제시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 조폐공사 역시 축적된 보안 기술을 바탕으로 건강한 미술 생태계 조성과 산업적 도약에 힘을 보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