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중 재정 압박에 ‘동맹 약화’ 우려…인상 찡그리는 일본

2024-11-16

[주간경향]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후,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의 ‘5분 전화 회담’이다. 통역을 제외하면 인사만 하고 끝난 것이다. 여기서 고인이 된 아베 신조가 다시 소환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2016년 11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골프채를 들고 취임 전 트럼프의 집을 방문해 친목을 다진 사례가 전설처럼 회자한다. 이시바도 당면한 G20 회의를 즈음해 트럼프와의 회담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인처럼 말하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난 이시바를 트럼프의 거친 리더십이 상대해 줄까? 일본 여론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부활과 미·중 무역전쟁 재연이 키워드로 부상한 한국과 중국의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있다.

일본의 반응은 트럼프가 부과할 것이 확실한 ‘협상 과제’에 대한 우려다. 먼저 방위비 증액과 관련해 기시다 내각에서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시바 내각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이상을 요구할 것이고, 고액의 방위 장비 구매 청구서도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해 주일미군기지 유지경비 관련 협상 또한 예정돼 있다. 방위비용과 관련해 일본은 그동안 지속적인 엔저 현상의 영향으로 막대한 추가 재정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안전보장 관련 비용 요구는 일본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고, 이것이 다시 엔화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이시바 총리가 이를 끊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시선은 거의 없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둘러싼 협상 또한 일본에 난제다. 일본의 자동차 등 제조업계는 이미 손실을 각오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세장벽으로 인한 미국 국내 인플레이션의 지속 또는 상승이 달러의 강세와 엔화의 약세를 지속시킬 것이고, 이는 곧 일본 국내의 물가 상승을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민당이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었다. 현재 소비세를 비롯한 감세를 주장한 정당들이 의석수를 확대한 상황이다. 이시바 내각은 트럼프의 귀환으로 이중의 재정압박을 받게 됐다.

경제안보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의 대중전략 향방이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공급망 구축에 미국과 보조를 함께해왔지만, 대중 경제관계 회복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첨단 분야를 넘어 전 업종에서 디커플링을 추진할 경우, 일본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유사시 대만에 대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장과 향후 대응도 주목받는다. 중국의 대만 침공에도 무력 불개입을 시사해왔던 트럼프의 발언이 진정성을 보인다면, 미·일동맹은 물론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대만해협의 전쟁은 곧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 해협의 전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바 내각은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여당을 이끌고 대응해야 할 처지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베 외교의 레거시(유산)가 칭송되고 있지만 정치자금 스캔들, 아베노믹스 등의 영향으로 총선에서 패배한 이시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이시바의 지론인 ‘미·일지위협정 수정’ 가능성은 없어졌고, ‘아시아판 NATO’ 등 다자간 안전보장 협력의 새판짜기도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정세다. 트럼프가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애써 수정하지는 않겠지만, 미·일동맹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외교는 가치보다 실리를 목표로 양자관계를 중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취임 전 전쟁을 끝낸다”는 트럼프의 예고가 현실화할 것인지 관건이다. 트럼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종전을 끌어낼 경우, 이는 곧 북·미관계와 미·중관계로 연동된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월관계는 약화하는 반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부활하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이시바의 외교 구상은 또다시 좌절할 수 있다. 이시바는 총리 선거에서 북·일 정상회담은 물론 연락사무소 설치 등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공약했지만, 이러한 국면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국제무대에서 트럼프식 외교가 실천력을 보일수록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2021년 4월에 발표된 바이든-스가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인도·태평양전략의 최전방 국가로서 대만 유사 사태를 일본의 유사 사태로 간주한 바 있다. 같은 해 5월,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서는 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한 한·미·일 협력을 ‘한·일동맹의 핵심 징표’로 정의했다. 그러나 대만 유사 사태 시 미국이 무력 개입을 거부하고 북·미 정상회담 부활이 북한 핵 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로 귀결될 조짐이 보인다면 한·미·일관계는 당분간 유동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미·일동맹이 ‘악화’되지는 않겠지만 ‘약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불어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시바 내각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까지 유지될 것인지 아닌지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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