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에서 만난 '더 기아 타스만'은 거침이 없었다. 물속이든, 질척이는 산길이든, 거친 자갈밭이든. 평소 같았으면 선뜻 앞으로 나가기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막상 페달을 밟으니 거친 오프로드 본능이 깨어났다.
무려 4년이 넘는 개발 기간 동안 국내는 물론 미국·스웨덴·호주·중동까지 총 1만8000회 이상 극한의 시험을 거친 타스만의 최첨단 기술과 성능이 고스란히 발휘된 덕분이다.
기아 브랜드 최초의 정통 픽업트럭인 타스만은 '픽업,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혜영 기아 국내마케팅팀 상무는 "타스만은 픽업이지만 지금까지의 픽업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넘나드는 타스만의 퍼포먼스에 단번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전장 5410mm, 전폭 1930mm, 전고 1870mm. 거대한 크기와 달리 정면에서 바라본 타스만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처럼 보인다. 커다란 그릴과 헤드램프, 크롬 재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여타 픽업과 달리 타스만의 외관은 간결하고 깔끔하다. 검정색으로 마감한 라디에이터 그릴이 픽업 특유의 강인한 느낌을 내면서도 과하지 않다.
타스만 익스트림 모델을 타고 공도를 달리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타스만의 특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픽업트럭은 승차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비웃듯 부드럽게 치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타스만은 2속 ATC를 적용해 ▲2H ▲4H ▲4L ▲4A 등 다양한 주행 상황에 최적화된 구동 모드를 제공한다. 공도를 달리는 동안에는 후륜에만 구동력을 전달해 연비 주행이 가능한 2H 모드와 차량이 주행 상태를 판단해 자동으로 최적의 구동력을 배분하는 4A 모드를 활용했다.
특히 이날 바람이 많이 불어 가속시 차체가 불안정하게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무겁고 단단한 차체가 안정감 있게 받쳐줬다. 전방 유리와 1열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하고 외부에서 실내로 이어지는 환기통로도 최적 설계하는 등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는 연구원들의 노력도 빛을 발했다.

타스만의 진정한 매력은 오프로드에서 발휘됐다. 극강의 오프로드 성능을 느끼기 위해 오프로드 특화 트림인 X-PRO(엑스 프로) 모델에 탑승했다.
본격 오프로드 주행에 앞서 워밍업을 위해 택시 드라이빙 형태로 해발 840m 박달고치 전망대에 올랐다. 최근까지 눈이 내리고 녹은 터라 진창이 된 산길이었지만 주행 동안 단 한 번의 미끄러짐 없이 안정적이었다.
특히 진창이 된 미끄러운 하산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단 기어를 체결하는 4L 모드로 구동력을 극대화해 험난한 지형에서도 주행이 가능했다.
2열에 앉아 꽤 긴 코스를 오르내렸지만 승차감도 만족스러웠다. 타스만은 동급 최초로 슬라이딩 연동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했다. 실제로 앉아보니 리클라이닝 기능에 넉넉한 레그룸까지 패밀리카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이제 직접 타스만의 오프로드 매력을 느껴볼 시간. 4L모드를 활성화하고 터레인 모드를 '머드'로 설정한 뒤 흙탕물 앞에 섰다. 바닥은 진흙으로 질척이고 물은 바퀴의 절반 이상에서 찰랑였다. 잔뜩 겁먹은 채로 빨리 코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무전기로 타스만을 믿고 천천히 오프로드의 참맛을 느껴보라는 인스트럭터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티어링휠을 가볍게 움켜쥐고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맞기니 조금씩 긴장이 풀어졌다. 자칫 진흙 속에 빠질 뻔한 상황인데도 타스만은 크게 미끄러지지 않고 가볍게 빠져나갔다.
이제 제법 내부 오프로드 페이지를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오프로드 페이지에서는 양쪽 바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차량 전방의 길 상태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언덕 코스에선 진입과 동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진흙 언덕을 지나야했는데, 차량이 기울어진 탓에 전방에 하늘만 보이는 상황에서도 오프로드 페이지를 활용하니 손쉽게 주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약 시속 10㎞ 이하 저속 크루즈 모드인 X-TREK(트렉) 모드까지 활성화하면 아예 페달에서 발을 떼고 화면만 보고 주행할 수 있다.
이번 오프로드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수심 800㎜ 도강 코스였다. 타스만은 기아 최초로 에어인테이크 흡입구를 측면 펜더 내부 상단950㎜ 높이에 위치시키고 흡입구의 방향 또한 차량 진행방향과 반대로 배치해 도하 시 흡기구를 통해 엔진으로 물이 유입되는 상황을 방지함으로써 800㎜ 깊이의 물을 시속 7㎞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도하 성능을 확보했다.
창밖으로는 탁한 흙물이 사방에서 애워싸고 실내에서는 찰랑찰랑하는 물소리가 들려 긴장감이 고조됐다. 바닥 돌길을 지나며 흔들렸지만 차체가 심하게 움직인다거나 핸들이 꺾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뺀 손이 살짝 흔들리자 "이것이 오프로드의 맛인가"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날 시승한 익스트림과 X-PRO 두 모델의 가격은 각각 5230만원과 5595만원이다. 일부 옵션 사양이 포함된 가격이다. 일각에서는 5000만원대 타스만의 오프로드 성능이 오히려 한국에선 오버스펙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만큼 타스만에 구현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하지만 3750만원 엔트리 모델은 내놓은 기아는 자신감이 넘친다. 낮은 가격대로 픽업트럭으로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최상위 트림으로 마니아층을 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프로드에 대한 취미 활동이 대중적이지 않지만, 타스만을 시작으로 그런 시장까지 저희가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