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오후(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고깃집. 2개 층으로 구성된 매장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타가이(‘건배’라는 뜻)”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이들은 한국식 삼겹살 구이에 ‘진로’ 라벨의 녹색 소주병을 비웠다. 랄리(29)씨는 “즐겨 보던 한국 드라마에서 소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걸 보고 호기심에 직접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한국이 동남아시아 가운데 진로 소주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소주 판매액이 연평균 42%가량 증가했다. 전체 필리핀 소주 시장에서 진로 소주의 점유율은 67%에 달한다. 현지에서 만난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단순히 술이 아니라 한국의 술 문화를 팔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산 식음료를 뜻하는 ‘K푸드’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한류(韓流)의 한 줄기다. 음악이나 드라마·영화 같은 ‘K콘텐트’가 먼저 자리를 잡고 K푸드도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2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은 전년보다 8.9% 증가한 99억7640만 달러(약 14조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해마다 농식품 수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6년 실적과 비교하면 54% 넘게 불었다. 올해도 기록 경신이 예상된다. 1월부터 4월까지 농식품 수출액은 역대 1~4월 가운데 최대치인 34억2510만 달러를 찍었다.

K푸드 수출을 주도하는 세부 품목은 갈수록 다변화하고 있다. 라면·쌀가공식품·김치 등에서 진입 장벽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주류까지 확대하는 추세다.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주 같은 술 수출이 늘면 함께 먹기 좋은 다른 한국 음식 수출까지 촉진할 수 있다”며 “K푸드 수출이 성장세를 가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외국인 소비자가 직접 한국을 찾으려는 수요가 늘어나 국내 내수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농식품부는 2027년 K푸드와 전후방 산업(스마트팜·농기자재 등) 수출액을 합쳐 230억 달러(약 31조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바람이 실현되면 반도체·자동차 등에 편중된 한국의 주력 수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K푸드 수출 성장세에 걸림돌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다. 특히 미국은 지난달 5일부터 K푸드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주원철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현재까진 미 유통업체가 관세 부담을 떠안고 있어 K푸드 수출에 큰 영향은 없다”면서도 “추후 상황이 변할 수 있어 총력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