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방문한 경기도 성남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에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최신 검사 장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 내 신뢰성연구센터는 각종 전자 부품이 우주에서도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장비들로 빼곡 차 있었다. 특히 글로벌 과학 기업 써모피셔사이언티픽의 전자현미경은 국내 대기업 연구소 외에 찾아보기 어려운 장비로 균열이 생기기 쉬운 온도와 환경을 갖춘 우주에서 부품이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 미리 점검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장비로는 검사할 수 없는 반도체 내부의 접합 단면 구조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전자현미경 옆 초음파 검사 장비도 눈길을 끌었다. 이 장비는 부품에 초음파를 쐈을 때 반사되는 신호를 분석해 부품의 미세한 결함도 잡아낼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광통신 부품의 광원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구형 모양의 적분구 장비나 부품 내 어떤 부위가 가장 먼저 고장날지 예측할 수 있는 초가속수명시험기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관훈 KETI 신뢰성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이 이런 장비를 확충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검사를 하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진도 센터를 자주 방문한다”고 전했다. KETI는 산업통상부 산하 전자·정보기술(IT) 분야 전문 생산 연구기관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연구개발(R&D) 인프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나의 우주 부품 성능을 완벽하게 점검하려면 수십 종의 검사 장비가 필요하다. △충돌에 견디는 기계적 평가 △열 내구성 평가 △수명 평가 △고장 분석 △방사선 장시간 노출 이온화 선량시험 등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우주 소재·부품은 일반 제품보다 훨씬 더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고장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방사선에 노출되는 진공 환경과 높은 온도에도 견디는 내성이 있어야 한다. 신뢰성연구센터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저궤도 등 우주 궤도의 방사선 환경을 가정해 우주용 전자 부품의 우주 방사선 차폐 효과를 실험함으로써 부품의 신뢰성을 확보한다. 방사선·고온에 의해 부품이 시간 경과에 따라 얼마나 열화되는지 등을 검사하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우주 부품은 섭씨 영하 55도에서 영상 125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는데 이는 민수용 부품은 물론 군용 부품보다도 엄격한 조건”이라며 “우주 환경은 지구의 공전·자전 등 요인으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모의 실험을 진행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후 민간 중심의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 부품의 신뢰성 확보는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한국 우주산업의 최대 과제가 재사용 발사체로 떠오르면서 여러 번 쏴도 끄떡없는 부품을 수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엔드급 부품 없이는 재사용 발사체 상용화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발사체를 재사용하면 동일한 부품을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기존 소모성 로켓에 비해 발사 비용이 대폭 절감되지만 고품질 부품 공급망이 확보돼야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당장에는 부품의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주 소부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면서 “자국 내 산업 기반이 부족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성장한 네덜란드 ASML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산업을 새로운 수출 역군으로 키우기 위해 국내에서 우주 부품 인증제도 신설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유럽우주국(ESA)은 각자 표준을 세워 전자 부품, 소재, 재료의 신뢰성 및 품질 보증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우리 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지해 표준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은 내년 국방 우주 품질인증제도 시범 시행을 앞둔 상태다. 정부 인증으로 높은 신뢰성을 확보해 국내 우주 제품의 품질 향상과 수출 경쟁력 강화, 우주 방위산업 활성화에 일조하겠다는 방침이다.
KETI는 국내 우주 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넘어 기술 자립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3년 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우주용 통신 칩을 만들고 있으며 우주항공용 고신뢰성 반도체 설계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비영리 민간 응용연구기관인 사우스웨스트연구소와는 항공우주 분야 차세대 위성용 핵심 부품 등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이 연구원은 “우주 부품 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에 기술이전하는 등 R&D 성과를 내왔다”면서 “국내 우주 소부장 생태계 완성을 위한 컨설팅 역할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