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본고장 울리는 '어쩌면 해피엔딩'

2025-05-14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국 뮤지컬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에서 공연 중인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토니상의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작품상·각본상·연출상·음악상·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 모두 이름을 올리며 최다 부문 후보작이 됐다.

브로드웨이 객석 점유율 93%

토니상 작품상 등 10개 부문 후보

우란문화재단 지원으로 작품화

뮤지컬계 '기생충 신화' 기대감

뉴욕 리딩 공연서 미국 진출 물꼬

토니상에 대한 기대감은 지난 12일 수상작을 발표한 제75회 외부비평가협회상(Outer Critics Circle Awards)에서 최우수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상과 연출상·음악상·각본상 등 4관왕에 오르며 더욱 커졌다. 그뿐 아니다. 지난 1일엔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가 주는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았고, 미국의 뮤지컬 분야 상 중 가장 역사가 긴 드라마리그어워즈에서도 작품상·연출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전 크리틱스초이스어워즈, 미국 배우조합상 등 굵직굵직한 영화상들을 휩쓸었던 영화 ‘기생충’이 연상되는 행보다.

흥행도 순풍이다. 개막 이래 객석 점유율은 평균 93%에 달한다. 흥행이 부진하면 바로 막을 내려야 하는 브로드웨이 한복판에서 내년 1월까지 장기공연이 확정된 상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과가 우리 공연계에 각별한 의미가 되는 것은 이 작품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 모두 한국의 인프라와 정서를 토대로 한 ‘한국산(産)’이어서다. 단순히 한국 자본이 들어가거나 창작자 중 일부가 한국인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작품은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사업으로 개발됐다. 우란문화재단은 최태원 SK 회장의 모친 우란 박계희 워커힐미술관 설립자의 호를 딴 문화지원 재단이다. SK행복나눔재단의 문화사업팀에서 독립해 2014년 설립됐고, 첫 지원사업 대상이 바로 ‘어쩌면 해피엔딩’의 극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 이른바 ‘윌휴’ 콤비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처음부터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을 동시에 만들었다. 당시 우란문화재단 프로듀서로 개발 작업을 함께 한 김유철 현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은 “그때 브로드웨이까지 꿈꾸진 못했지만, 해외시장도 같이 개발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회고했다.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을 하기 전인 2016년 7월 뉴욕에서 영어 버전 리딩 공연을 마친 것도 그런 포부를 안고서였다.

바로 그 뉴욕 리딩 공연을 통해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을 여덟 번이나 받은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의 마음을 산다. 그와 2017년 계약을 했고, 2020년 애틀랜타 트라이아웃 공연에 이어 지난해 마침내 브로드웨이에 안착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지적재산권(IP)은 온전히 창작자들이 갖고 있다. 산파 역할을 한 재단 측의 조건 없는 지원 방침에 따라서다.

사랑, 시작해도 될까…로봇에 감정이입

이런 창작 시스템보다 더 한국스러운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근미래 서울이 배경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제 구형이 돼버린 휴머노이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다. 부속마저 단종돼버려 이들의 삶은 끝을 알지 못하는 ‘시한부’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점점 몸이 망가져 가는 현실 앞에 자신들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는 게 두려워 함께 했던 시간의 메모리를 지우기로 한다. 기억을 진짜 지웠을까, 아닐까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2016년 12월 초연한 국내 공연은 지난해 다섯 번째 시즌까지 이어지며 숱한 팬들의 ‘인생 뮤지컬’로 등극했다. ‘낡아가는’ 로봇에 ‘늙어가는’ 인간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쉽게 이뤄진다. '인간적인 공감대 형성'은 미국 스탠퍼드대 대프나 주어 교수가 꼽은 한국 드라마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가장 냉정한 억만장자조차도 인간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그 실력으로 로봇마저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미국 언론들도 이를 예리하게 짚는다. 뉴욕타임스는 “사랑의 시작이 상실의 시작이라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게 나을까, 그 기억을 지우는 게 나을까 등의 질문은 가장 인간적인 질문”이라고 평했고, 버라어이티는 “로봇의 사랑에 대한 공연에서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기분 좋은 놀라움(pleasant surprise)’을 느낀다”고 했다.

토니상 시상식은 다음 달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다. 국내 창작뮤지컬 1호는 1966년 ‘살짜기 옵서예’로, 내년이 60주년이다. 뮤지컬 본고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기까지 걸린 60년 세월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상 소식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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