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전장 냉난방 공조시스템

“바깥 날씨가 좀 더웠는데, 전시장 안은 서늘하고 쾌적하네요.”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Dior)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 김모(34)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급 수제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 의상부터 가방, 신발 등 민감한 원단과 가죽, 장신구로 제작된 물건을 몇 달간 전시하려면 실내 온·습도 관리가 핵심이다. 전시장 뒤편에 설치된 LG전자의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 ‘도아스(DOAS)’가 그 역할을 한다.
LG전자에 따르면, 도아스는 냉·난방은 물론 제습과 공기청정 기능도 갖췄다. 실외 공기를 끌어와 실내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실내 공기만 활용하는 기존 공조 시스템보다 환기 능력이 크게 강화됐다. 특히 제습 성능이 뛰어나 의류 매장과 급식 시설, 물류센터 등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국내 판매를 시작한 도아스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도아스 같은 B2B(기업 간 거래) 기반 HVAC 사업은 최근 가전업계의 ‘조용한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냉난방 공조가 데이터센터·반도체공장·물류센터·전시관 등 산업·상업용 인프라의 핵심 설비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HVAC 시장 규모는 지난해 3016억 달러(약 415조원)에서 2034년 5454억 달러(약 75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가전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HVAC에서도 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다르다. LG전자는 자체 개발한 기술에 승부수를 뒀다. 가정용 에어컨에서 시작해 2010년대엔 공장·원전 등 산업·발전용 제품으로, 2020년 이후엔 AI 데이터센터 열관리 솔루션으로 발빠르게 제품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진행해왔다. 내년에는 HVAC 사업이 속한 ES사업본부 연매출이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본다.
반면 삼성전자는 직접 개발보단 인수합병(M&A)을 택했다. 지난달 14일 유럽 최대 상업용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 그룹’을 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한 게 신호탄이다. 생성 인공지능(AI)과 로봇, 자율주행, 확장현실(XR) 등의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질 전망이라 단기간에 점유율과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는 M&A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그간 대형 시설용 ‘중앙 공조’보단 일반 가정·중소 시설용 ‘개별 공조’에 집중해왔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무대행(사장)은 “앞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공조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속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