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 생존모드 돌입...애경산업·중부CC 매각 추진
재무 리스크 고조...AK홀딩스 작년 총부채 4조원 넘어
사업 구조조정...주력사업 중심축도 화학·항공 이동할 듯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최근 재무 리스크가 커진 애경그룹이 생존을 위한 새 판 짜기에 착수했다. 그룹 모태인 생활용품·화장품 사업인 애경산업마저 매각을 추진하며 고강도 체질 개선 카드를 꺼내든 모습이다.
위기 돌파는 투 트랙으로 추진된다. 알짜 계열사인 애경산업을 매각하고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등 자산 유동화를 추진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항공과 화학으로 사업을 재편해 위기 돌파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이 기업의 근간인 애경산업도 예외 없이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한 모양새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 매각' 카드부터 만지작거리고 있다. 애경산업 경영권 지분 63.38%를 처분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매각 주관사는 삼정KPMG를 선정했다. 애경산업 시가총액이 3829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단순 지분 가치는 2426억 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과 자산가치를 합치면 매각가는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발생한 '제주항공 무안참사'로 재무 리스크가 커진 상황 속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소위 '돈 되는' 회사를 팔아 그룹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내린 결단인 셈이다.
애경산업은 1954년 애경유지공업으로 출발한 그룹의 모태사업이다. 생활용품 브랜드 '케라시스' '2080', 화장품 브랜드 '루나'가 대표적인 제품이다.
애경산업은 그룹 내에서도 재무구조가 안정적이고 알짜 계열사로 평가받고 있다. 수년간 계속된 화장품 업황 부진 영향으로 실적 감소는 불가피했다. 지난해 매출은 연결 기준 679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 소폭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474억 원으로 24% 감소했다.
그러나 재무 구조는 탄탄하다. 애경산업의 지난해 총부채는 987억원에 그친다. 부채비율은 25%로 현격히 낮다.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면 제무 구조가 안정적으로 평가된다.
애경산업 경영진도 매각 추진을 시인했다.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이사는 전날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내부 간담회를 열어 "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며 "최근 매출과 영업이익이 좋지 않았다"며 "회사 임직원의 근로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가져가겠다"고 임직원에 매각 추진 사실을 공유했다. 애경산업 직원들은 갑작스레 매각 추진 소식을 접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력 사업도 과감하게 정리한다. 현재 골프장 사업인 중부CC가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지주사 AK홀딩스 '부채 줄이기' 총력전
이처럼 애경그룹이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것은 지주회사인 AK홀딩스의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AK홀딩스가 그간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회사를 지원해온 것이 발목을 잡았다. AK홀딩스는 지난해 말부터 AK플라자에 16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AK플라자는 전국에 백화점과 쇼핑몰 등 11곳을 운영하며 유통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또 AK홀딩스는 2020년부터 작년까지 제주항공과 AK플라자에 2669억원, 791억원을 각각 출자했다.
자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느라 AK홀딩스의 작년 총부채는 연결 기준 4조918억 원으로 2020년(2조8894억 원)보다 1조7976억 원(62%) 불어났다. 부채비율은 328.7%에 이른다. 이자가 발생하는 부채 규모는 2조5339억 원에 달한다.
부채는 크게 불었는데, 현금은 줄면서 재무 안전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AK홀딩스의 작년 연결 기준 현금성 자산은 3535억 원으로 전년(5006억 원) 대비 1471억 원(29%) 감소했다. 별도 기준으로 보면 AK홀딩스의 현금성 자산은 274억 원에 그친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 등 자산을 매각하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으로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고 추가 투자 여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K홀딩스는 "현재 그룹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매각 관련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항공·화학 중심으로 사업 재편 관측도
유통 업계는 애경그룹이 향후 사업 전망이 밝은 항공(제주항공)과 화학(애경케미칼) 분야로 사업의 중심 축을 옮기는 식으로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저비용항공(LCC)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외형 성장도 이뤄냈다. 지난해 제주항공은 연결 기준으로 1조935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으나, 고환율 등의 여파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무안 참사 여파로 한때 휘청이긴 했지만 제주항공 경영은 상당 부분 정상화되고 있다. 제주항공은 올해 1~2월 120만6742명의 국제선 여객을 수송하며 LCC 가운데 실적 1위를 기록했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지난달 26일 제주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제주항공은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운항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해 왔고, 사고 이후 3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회사 경영은 상당 부분 정상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전 경영을 위해 구조적인 측면을 포함한 펀더멘탈부터 재점검해 고도화 방안들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애경케미칼 역시 애경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지난해 1조6422억 원의 매출고를 올렸다. 영업이익은 153억원을 거뒀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가소제, 아라미드 등을 중심으로 한 스페셜티 화학업체로 전환해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애경케미칼은 2021년에 애경화학과 에이케이켐텍을 흡수합병하고 ▲가소제 ▲합성수지 ▲생활화학 ▲바이오·에너지 등 4개의 사업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가소제는 폴리염화비닐(PVC)의 주 원료로 사용된다. 친환경 이슈와 맞물려 애경케미칼의 주력 분야인 친환경 가소제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속한다. 아이 장난감 등 PVC 제품의 첨가제로 널리 활용된다.
아리미드는 강철보다 가볍고 단단하며 난연성을 갖춰 '슈퍼섬유'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HS효성첨단소재에서 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침체와 경쟁력 약화로 AK플라자와 애경산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분위기였다"면서 "애경산업의 경우 지금이 제대로 값을 매겨 팔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알짜 혹은 비핵심 자산을 유동화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재편해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nr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