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생폼사, 그래야 완주한다” 제주 트레일러닝 100K 참가기

2025-04-09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열린 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 대회에 참가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제주 트레일 러닝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로 올핸 총 2000여 명이 참가했다. 그중 가장 긴 ‘100K’는 총 100㎞ 구간을 사흘(각각 32K·32K·36K)간 달리는 레이스다. 이처럼 하루 수십㎞씩 연달아 뛰는 경기를 ‘스테이지 레이스(stage race)’라 하는데, 대표적인 울트라마라톤 중 하나인 사하라 마라톤도 이런 식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레이스는 첫날 영주산(326m)을 시작으로 오름 4곳을 왕복하는 32㎞ 달리기, 둘째 날 제주 서쪽 하도해수욕장에서 표선까지 해안 길 32㎞, 그리고 셋째 날은 가시리 갑마장 둘레 18㎞를 왕복하는 36㎞ 달리기로 짜여 있다.

트레일 러닝은 기존 마라톤과 등산만 하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저변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자연을 달린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또 마라톤과 달리 기록 달성보단 완주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제한 시간도 여유 있어 달리기에 자신 없는 사람도 도전할 수 있다. 마라톤 풀코스(42.195㎞)의 제한 시간은 보통 5시간, 반면 같은 거리의 트레일 러닝은 10시간 이내만 들어오면 된다. ‘걷는 듯 달리는 듯’ 해도 완주 타이틀을 딸 수 있다. 시속 5~6㎞ 정도의 슬로 조깅(slow jogging)으로도 충분하다. 기자가 이 대회에 참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회를 주최한 안병식(52) 레이스 디렉터는 “평소 꾸준히 산에 다녔다면 완주할 수 있다”고 했다. 단 “걷기만 해선 안 된다”고 일렀다.

첫날인 4일 오전 6시30분, 스테이지1이 시작되는 성읍민속마을 정의읍성 앞에 320명의 참가자가 모여 들었다. 다들 차려입은 모양새가 화려하다. 등산 복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참가자의 연령은 20~60대, 남녀 성비는 2대 1 정도였다. 대부분 직장인이라고 한다. 트레일 러닝은 어느 대회든 필수 장비 목록이 있다. 트레일 러닝 신발과 백, 물, 비상 키트 등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300여 명의 건각들이 출발선을 뛰쳐나갔다.

산길이나 자갈·모래 밭 등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은 마라톤보다 위험 요소가 많다. 그래서 대회 주최 측은 반드시 레이스 중간에 체크포인트(CP)를 둔다. 보통 10~15㎞마다 CP가 있어 물과 초콜릿 등을 섭취하고 보충할 수 있다. 첫날 CP1은 영주산 너머 12㎞ 지점에 있었다.

CP1을 앞둔 지점, 오름(영주산) 하나를 넘어왔을 뿐인데 벌써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앞으로 오름이 3개 남았고, 다시 반환점을 돌아 원점까지 가려면 험난한 고개를 7개 넘어야 했다. 낭패였다. 나름 ‘산에 다닌 사람’으로서 오르막에선 다른 참가자에 뒤처지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는데, 자만이었다. 무엇보다 평소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행히 체력이 바닥난 것은 아니었다. 내리막(다운힐)에선 여전히 달릴 수 있었다. 그러다 다시 평지에서 걷기 시작했다. 단, 속도가 5㎞/h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빨리 걷고, 보폭도 등산할 때보다 더 크게 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미에서 달리는 약 50여 명의 몸 상태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뒤에서 달리고 있지만 나의 앞뒤에 같이 가는 동료가 있다는 것,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면서 서로를 격려해가며 달린다는 것, 그것이 힘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뒷사람이 나를 추월해 갈 때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아니라 그를 향해 “파이팅”을 외쳤다. 나를 제치고 가는데도 그를 응원하는 것이다. 정작 격려를 받아야 할 사람인 나인데도 말이다. 기록을 재는 ‘컴페티션(competition)’ 스포츠에 참가해 내가 아닌 타인을 응원하고 있다니. 묘한 감정이 일었다.

CP를 거쳐 백약이오름(356m), 동검은이오름(340m), 좌보미오름(342m)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 다시 CP로 돌아오니 약 3시간이 걸렸다. 이날 레이스의 3분의 2지점이다. 선두에서 달린 선수들은 3시간 내에 레이스를 마쳤다. 선두보다 2~3시간 늦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골인 지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스타트 지점에서 ‘최소한 내리막에선 걷지 말고 레이스를 마무리하자’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이때 장딴지에 경련 신호가 있었는데, 그대로 달렸다면 다음날 레이스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