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치가 문제야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은 1971년에 쓴 『소득분배』에서 현실의 소득 불평등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난쟁이 행렬’을 소개했다. 영국의 모든 사람이 가장행렬을 하는데, 이들의 키는 소득에 비례한다. 낮은 키부터 한 시간 동안 퍼레이드를 하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처음엔 땅에 머리를 파묻고 거꾸로 선 파산한 사업가가, 다음으론 땅에 붙어 있다시피 한 실업자, 키가 1m도 안 되는 저임 노동자 등이 등장한다. 평균 신장은 48분에 나온다. 마지막 6분을 남기고 2m가 넘는 소득 상위 10%가, 마지막 몇십 초는 수십m의 거인들이 행진한다.

야당의 10·15 대책 반대 지나쳐

강남 사는 공무원이 무슨 죄인가

이재명 정부 돈 풀기도 경계해야

얀 펜 방식으로 한국 아파트의 행렬을 상상해 봤다. 아파트를 사람으로, 아파트 가격은 키에 비례한다고 치자. 올해 8월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가격인 5억3843만원이 평균 신장 170㎝가 되겠다. 1시간 행렬의 처음엔 키 47㎝의 지방 중소도시 구축 아파트(1억5000만원)가, 15분엔 지방 광역시 중저가 아파트(3억2000만원)가 나타난다. 30분에 등장하는 중위가격(4억7000만원) 아파트는 평균 키에 훨씬 못 미치는 148㎝다. 평균 키는 40분 전후에, 2m37㎝의 수도권 외곽의 신축 아파트(7억5000만원)는 45분에 보인다. 평균 아파트값이 14억원을 넘어선 서울 아파트 상당수와 복기왕 민주당 의원의 15억원 ‘서민 아파트’도 50분대 중후반에, 특히 40억원 넘는 강남 3구와 용산의 초고가 아파트는 12.6m 거인의 모습으로 60분에 임박해 행렬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대충 상상해 본 행진 모습이다. 아파트만이 아니라 연립·다가구와 단독주택까지 포함한 모든 주택을 따지거나 아파트가 아니라 소유자 기준으로 보면 키 작은 이들의 행렬이 더 길어지고 거인의 키는 더 높아지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올 것이다. 세상은 온통 키 작은 아파트 천지지만 모두 거인만 부럽게 바라보고 산다. 우리는 ‘서울·수도권 공화국’에 살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일부 아파트의 갭투자를 금지하고 대출을 죄는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주장부터 중산층의 내 집 마련과 상급지 갈아타기 희망을 억지로 눌렀다는 불만과 전·월세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정부가 결코 무시해선 안 될 목소리들이다. 하지만 10·15 대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야당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인기는 없지만 당장은 필요한 정책이다. ‘부동산 3인방’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퇴 요구도 과도한 정치 공세다. 12년 전 갭투자나 25년 전 재건축 딱지 구입으로 강남 고가 아파트에 살면 부동산 정책도 펴지 말란 말인가. 김용범 정책실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쓴 대로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실수요자의 불편이라는 큰 대가를 감수하고 내놓은 대책이다. 그가 약속한 대로 이번 조치로 번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공급 확대에 성과를 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반의 부동산 정책을 지휘했던 김수현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년 전 『부동산과 정치』를 썼다. 비교적 솔직하게 좋은 기록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 정부 후반기 집값 폭등에 이런 평가를 했다. 첫째, 부동산 대출을 더 강하게 억제했어야 했다. 차주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더 빨리 엄격하게 적용하고, 전세 대출 등 우회 대출을 막았어야 했다. 둘째, 공급 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했다. 셋째, 보유세 강화와 임대사업자 제도 혼선으로 정책의 신뢰를 잃고 정부 리더십이 흔들렸다.

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문재인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기 방어를 위해 돈줄 죄기를 망설이는 “둔감하고 느린 결정”을 했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돈이 풀리면 집값은 불안하다. 내년 예산을 728조원의 수퍼 예산으로 적자재정을 편성해놓고 정부는 국민 돈 쓰는 것만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