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는 죄, 집 없는 벌

2025-10-26

사는 집이면서 자산이자 고수익 투자 상품으로 지위재까지 된 부동산은 대한민국 국민의 ‘발작 버튼’이다. 서울·수도권과 지방, 무주택과 유주택·다주택, 아파트와 비아파트, 고가 주택과 그렇지 않은 주택까지 다양한 입장과 상황·변수가 맞물리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탓이다. 어디서 터질지 모를 지뢰밭인 부동산 시장의 발작 버튼을 잘못 누르면 그 후폭풍은 거세다. 익히 보아온 바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발표한 ‘10·15 대책’은 이 발작 버튼을 제대로 눌렀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강력 3중 규제에 시장은 경악했다. ‘갭투자’ 원천 봉쇄와 무차별 대출 규제라는 ‘거래 완박’은 정책 당국자의 부동산 투자 신공과 오버랩되며 ‘그들이 사는 세상’을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란 거센 비난과 많은 이의 좌절을 불러왔다.

규제 지역에는 ‘정부 인정 투자 지역’이란 비아냥 섞인 꼬리표까지 붙으며 또 다른 양극화의 서막을 알리는 예고편이 됐다. 언제나처럼 규제 발 ‘절판 마케팅’에 몰린 ‘막차 타기 수요’가 시장을 휘저었고,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일시적 2주택자 등 무차별 규제의 피해자도 속출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번 규제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란 말은 무색할 지경이다. 시장의 논리와 기능은 사라졌다.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침해는 말할 것도 없다. 내 돈으로 내 집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다. 갭투자를 막기 위해 정부가 실거주 의무(2년)를 강화하며, 현금 부자라도 공무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에 비하면 자금조달계획서는 애교 수준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담보 가치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가 정해준 기준이 법이다. ‘6·27 대책’에서 6억원으로 못 박았던 주택담보대출 최대한도는 더 낮아졌다. 15억원 초과~25억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담보 가치가 높을수록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기이한 규제다.

겹겹이 쌓아 올린 규제로 사다리는 끊어졌다. 서울 서초에 있는 2주택 중 1주택을 자녀에게 양도해 처분하겠다고 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자녀처럼 부모 세대로부터 증여나 상속을 받을 수 없다면 소득이 높아도 목돈을 만들지 못한 젊은 층의 규제지역 입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갭투자 논란 속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의 말대로 돈을 모았다가 시장이 안정돼 집값이 떨어지면 살 수 있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뛰고 나는 집값을 따라잡으려면 ‘코스피 5000’을 향한 물결에 올라타 시드머니라도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수요를 틀어막는 이 강력한 억제책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지난 5월 했던 서울 서초구 유세 발언과는 딴판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안정적인 부동산 시장 정책으로 시장을 존중하겠다”며 “집값이 오르면 수요를 억압하지 않고 공급을 늘려서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과 괴리감이 생기더라도 비싸게 사고팔겠다는 것을 굳이 압박해서 힘들여 낮출 필요가 있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제 가용한 정책 수단과 역량을 집중 투입해 비생산적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던 대통령의 공약도 빈말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보유세 인상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군불을 때고 있다. ‘세금 폭탄’으로 집값 상승을 막겠다는 이야기다. 징벌적 세금의 부활이다.

개인의 욕망을 거스르며 금지와 징벌로 점철된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왜곡을 야기한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며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죄악시하며 쏟아냈던 각종 규제의 역풍은 ‘똘똘한 한 채’란 괴물이 되어 시장을 집어삼키고 ‘10·15 대책’이라는 메가톤급 부동산 규제를 낳았다.

‘10·15 대책’을 비롯해 앞으로 더 거세질 부동산 규제가 어떤 괴물을 낳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사다리를 간신히 타고 올라간 이들은 ‘집 있는 죄’의 대가를 치르고, 끊어진 사다리 아래 있는 이들은 ‘집 없는 벌’을 받을 것이란 사실이다. 유주택자는 거래에 따른 각종 족쇄에 더해 징벌적 과세까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무주택자는 공고한 규제 속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거나, 빨라지는 전세의 월세화 흐름에 ‘렌트 푸어’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집 있는 죄, 집 없는 벌’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건 징벌적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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