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화석 연료로의 귀환을 선언했지만, 정작 미국 석유 업계에선 업황이 오히려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셰일오일(석유) 관련 업체 13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3분의 1이 “지난해 말 이후 사업 전망이 악화됐다”고 답변했다. 한 업체 임원은 설문 응답에서 “(트럼프) 정부의 혼란은 원자재 시장에 재앙(disaster) 수준”이라며 “‘드릴, 베이비, 드릴’은 신화일 뿐이고, 대중을 선동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예측할 수 없고, 뚜렷한 목표도 없다”고 말했다.
우선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투자 위축 우려가 크다. 또 다른 업체 임원은 “2025년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라며 “상장기업으로서 우리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책적 리스크를 고려해 시추 투자를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하나의 불안 요인은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 소재가 석유 시추 장비의 핵심 원자재인 만큼 생산 비용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해왔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담당 고문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로 떨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석유업계에선 유가 하락은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조사기관 래피디언 에너지 그룹의 헌터 콘핀드 수석 애널리스트는 FT에 “유가가 5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 미국 전역에서 시추 활동이 둔화하고 결국 생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댈러스 연은 조사에 따르면 석유 업체들은 손익분기점을 평균 65달러로 보고 있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생산 비용이 판매 가격보다 높아지면서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5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26일 기준 69.65달러를 기록했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클라우디오 갈림베르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배럴당 50달러는) 미국에 이롭기보단 해로울 것이고, 미국이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억제와 에너지 생산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