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방송통신발전기금의 역설: '발전'의 이름으로 투자를 억제하는가?

2025-11-09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넷플릭스 데이터에 따르면, K콘텐츠는 평균 36.8개국에서 톱10에 진입하며 전체 평균(13.9개국)의 2.6배에 달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 다양성 지수는 94개국 중 3위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과의 이면, 국내 방송산업은 고사 직전이다. 2015~2024년 10년간 영업이익은 23% 급감했고, 영업적자 기업 수는 76개에서 157개로 107% 폭증하며 전체 사업자의 48%가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산업 전반이 붕괴하는 이 위기의 한가운데,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이 있다. 데이터는 명확히 증명한다. 산업 발전을 위해 걷는다는 기금이, 오히려 산업 붕괴를 가속하고 있다.

◇기금의 본질. 특수목적 재원인가, 제2의 세금인가?

기금과 세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금은 모든 국민이 내고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공익에 사용된다. 반면 기금은 특정 산업의 발전을 위해 그 산업 종사자들이 내는 특수목적 재원이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금을 납부한 사업자들의 공급망 강화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방발기금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소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기관인 아리랑국제방송과 국악방송에 2020~2026년 7년간 약 1837억원을 지원했다. 국회가 수년간 일반회계 이관을 시정 요구했음에도 2026년 예산안에 여전히 158억원이 편성돼 있다. 이는 방송 사업자들이 낸 돈으로 타 부처 사업을 대신 지원하는 것이며, 방발기금이 사실상 '제2의 세금'처럼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적 공익방송이 필요하다면 모든 국민의 세금인 일반회계로 충당해야 한다. 방송 사업자들만 부담하는 기금은 그들의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강화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방송의 영향력은 크지만, 수익은?

방송은 공익적 가치가 큰 산업이다. 여론 형성과 문화 확산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하지만 그 공익적 영향력이 곧 사업자의 수익으로 이어지는가? 데이터는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2024년 기준, 케이블TV(SO) 산업은 14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런데 납부한 방발기금은 250억원이다. 벌어들인 이익보다 1.7배 많은 기금을 납부한 것이다. 영업이익 대비 168.4%라는 비현실적 부담률이다. 반면, 1조6170억원의 막대한 이익을 낸 IPTV의 부담률은 4.7%에 불과하다. 5406억원의 이익을 낸 홈쇼핑은 4.4%다. 지상파는 1075억원의 적자를 냈음에도 188억원의 기금을 납부했다.

이 불공정의 근원은 징수 방식에 있다. 현행 제도는 SO, 위성방송, IPTV 사업자에게 경영 실적과 무관하게 '방송사업매출액'의 1.5%를 일괄 징수한다. 지난 10년간 SO 산업의 영업이익은 96.3% 증발했고, 2024년 기준 90개 SO 중 52개(57.8%)가 적자 상태다. 방송의 공익적 영향력은 크지만, 그 영향력이 수익으로 전환되지 않는 현실에서 '매출' 기준 징수는 생존의 한계에 부딪힌 사업자에게 징벌적 부담이 되고 있다.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은 기금을 내거나, 적자에도 기금을 내야 하는 제도가 어떻게 '발전 기금'일 수 있는가?

◇공급망 지원이 아닌 공급망 약화 - 투자를 억제하는 기금

기금의 본질은 납부자들의 집단적 이익, 즉 산업 공급망의 강화와 미래 경쟁력 제고에 있다. 그러나 현행 방발기금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패널 고정효과 모형 분석 결과, SO 산업에서 방발기금 1억원이 징수될 때마다 당해 연도 투자가 1억7000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충격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누적된다. 2024년 SO 산업이 납부한 250억원의 기금은 향후 3년간 총 987억원의 투자 감소를 유발한다. 기금의 3.95배에 달하는 미래 투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기금 납부로 투자 여력을 상실한 기업은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고, 이는 가입자 이탈과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악화된 수익은 다시 투자 여력을 감소시키는 '죽음의 악순환'이 완성된다. 기금이 공급망을 지원하기는커녕, 공급망의 미래를 억제하고 있다.

◇기금의 본질을 회복하는 세 가지 개혁

데이터는 분명히 말한다. 방발기금은 산업 붕괴를 막는 안전판이 아니라 붕괴를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기금 징수 대상 확대'는 산업 붕괴를 재촉하는 마지막 한 삽이 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금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첫째, 목적 외 사업의 즉각 이관이다. 아리랑방송, 국악방송 등 방미통위 소관이 아닌 사업은 국회 지적대로 즉각 일반회계로 이관해야 한다. 국가적 공익 사업은 모든 국민의 세금으로, 산업별 기금은 그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둘째, 징수 방식의 전면 개편이다. SO 산업 등에 적용되는 1.5% 매출액 기반 징수를 폐기하고, 산업의 현실을 반영한 영업이익 기반의 합리적 징수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방송통신발전기금법은 '사업자의 수익 규모와 재정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명시하지만, 현실에서는 완벽히 무시되고 있다.

셋째, '징수'에서 '투자'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업이 기금을 납부하는 대신 그 재원으로 자율적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발전 기금'이다. 기금 1억 원당 1.7배의 투자를 없애는 것보다, 그 돈으로 직접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 yhkim1981@sunmoon.ac.kr

〈필자〉선문대 경영학과 교수이자 오픈루트 연구위원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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