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리포트] 위기의 ​한국 영화계, 돌파구는 '애니메이션'

2025-04-30

[비즈한국] 2025년 1월 23일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AI 슈퍼스케일러 기술을 활용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해 눈길을 끌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2011년 7월에 개봉했으므로 무려 14년 만에 고화질 디지털 콘텐츠로 돌아온 것이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개봉 당시 관객 220만 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관객을 기록했고 지금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작품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2012)’의 관객 105만 명 기록을 깬 ‘사랑의 하츄핑’은 120만 명이 관람했다. 이 역시 청소년은 물론 20대 이상 성인을 끄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하츄핑’도 7세 이상 어린이들이 보도록 만든 키즈 콘텐츠 측면이 강한 점에서는 여느 한국 애니메이션과 다를 바 없다.

영상 콘텐츠로 세계를 주름잡는 K-콘텐츠가 유독 약한 게 애니메이션 장르다. 일본과 미국이 아동만이 아니라 성인도 즐겨 볼 수 있는 문화 콘텐츠 장르로 애니메이션을 키운 것과는 다르다. 더구나 저출산·저출생 상황에서 키즈 콘텐츠의 확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명필림이 준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꼬마’는 투자금 모으기가 여의치 않아 고전했지만 아동은 물론 어른도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지향하는 방향성은 맞다. 이 작품은 2010년 반달가슴곰의 서울대공원 탈출 사례에 바탕을 둔 창작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이제 세대 통합적 장르로 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 방식에서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우선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하는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 제78회 칸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에 충격을 주었다. 경쟁·비경쟁 부문 통틀어 한국 영화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정유미 감독은 그동안 세계적인 영화제에 여러 차례 초청되었는데, 장편 애니메이션 지원은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2009년 ‘먼지아이’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 ‘서클’(2024)은 베를린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연애놀이’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최초로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그랑프리(대상)를 수상했다. 2023년에는 ‘파도(The Waves)’가 로카르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먼지아이’는 2014년 그림책으로 출간됐고 한국 그림작가 최초로 볼로냐 라가치 대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도 ‘나의 작은 인형 상자(My Little Doll’s House)’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2년 연속 수상이었다. 영상과 출판을 아울러 좋은 성과를 냈다. 정유미 감독의 작품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아울러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확장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애니메이션 ‘플로우’ 사례를 살펴본다. ‘플로우’는 2025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국 대형 제작사가 만든 ‘인사이드 아웃 2’와 ‘와일드 로봇’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아 파란을 일으켰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라트비아 출신 긴츠 질발로디스(Gints Zilbalodis) 감독이 고등학교 때 연출한 단편을 85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우리 영화계는 어느 날 갑자기 장편영화를 제작,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 작가를 앞세워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멀티플렉스 시스템 덕분에 대형 물량 공세를 통해 스크린을 독점하고 몰아치는 방식이 가능해졌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당연시했다. 지금의 영화계 위기는 위험 분산에 취약한 이런 제작 방식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하지만 더는 불가능하다. 이제 미디어 콘텐츠 소비 환경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과 팬덤이 매우 강해졌다. 팬심과 관객들의 의견을 콘텐츠에 반영해야 한다. 예컨대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조하는 OTT도 요즘은 웹툰 원작 작품을 선호한다. 위험을 분산해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동시에 팬심에 기반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화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신예 감독과 작가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고, 이는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단편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웹툰과 그림책, 동화 창작자도 중요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동화책이 원작이다. 이른바 동심 콘텐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웹툰 강국이자 그림책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에선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 ‘구름빵’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알사탕’은 일본 제작진이 만들어 아카데미에 진출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문체부가 애니메이션을 어른과 아이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장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정부 지원이 중요한 분야다. 국내 유일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서울인디애니페스트와 같은 행사에도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이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지원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이 5월 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다. 넷플릭스에서 선보이는 첫 오리지널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그 결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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