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IB가?
4월에 MBC에서 방영된 교육 혁신 다큐멘터리 3부작 ‘교실 이데아’를 보면서 어쩌면 IB가 전 세계 유례없는 객관식 상대평가의 왕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복잡한 교육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발된 교육 과정 및 대입 시험 체제로 세계 여러 대학에서 신뢰성과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IB의 교육 목표는 다음과 같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문화 간 이해와 존중을 통해 더 나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탐구심과 지식, 배려심을 갖춘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학교, 정부 및 국제기구와 협력하여 도전적인 국제 교육 프로그램과 엄격한 평가를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학생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적극적인고 동정심을 가진 평생 학습자가 되도록 격려하고 있다.”
IB교육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수업방식을 구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영어로 수업 진행이 가능한 일부 국제학교에서나 할 수 있는 엘리트 교육이라고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2019년 대구시와 제주시 교육청의 노력으로 IB 프로그램의 한국어화를 확정하였다. 이로 인해 IB교육이 전국 11개 시도 교육청에 도입되어 일반 초·중·고등학교 프로그램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 전북특별자치도 교육청은 IB교육의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2023년도부터 IB 관심학교를 운영하여 현재 28개교에 IB 교육을 도입하고 있다.
덕과초는 IB 관심학교
‘교실 이데아’를 보는 내내, 나도 저런 학교에 근무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덕과초등학교는 2024년 6월에 IB 관심학교로 지정되었고 나는 9월에 덕과에 발령을 받았다. 작고 아름다운 학교, 연구하는 교사들이 있는 학교, 탐구심과 배려심을 키워주는 IB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꿈의 학교’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IB 관심학교는 말 그대로 IB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교이다. 따라서 우리 덕과초 선생님들은 매주 연구실에서 만나 IB교육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IB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교육’과 ‘수업’에 대해 깊은 고민을 나누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국제교류 어때요?
“IB의 교육 목표인 ‘문화 간 이해와 존중’을 위해 국제교류 수업을 해보는 건 어때요?”
“아이들이 그동안 영어 학습 앱으로 아침마다 익힌 영어 실력도 점검해 볼 수 있고, 국제적 시야도 생기겠네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아요. 멋진 제안이에요!”교장 선생님의 제안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덕과초 선생님들은 국제교류 수업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그다음 절차는 일사천리었다. 교장 선생님은 수업을 교류할 영국의 학교(Bishop Challoner School)와 수업 날짜를 잡으셨고,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업 주제를 고민하셨다. “아무래도 우리 한국의 전통을 알려주는 수업이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제안에 수업 주제는 한국의 전통 음악과 전통 놀이로 정해졌다.
덕과초의 5학년 학생들은 영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사물놀이를 선보이기 위해 아침마다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과 함께 사물놀이를 연습했다. 첫 수업 날이 가까워질수록 4개의 전통 악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멋진 소리판이 펼쳐졌다.
떨리는 첫 수업
“선생님!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틀리면 어떡해요?”첫 수업을 앞두고, 리허설을 마친 안정이가 상기된 얼굴로 걱정을 늘어놓았다. 영국 친구와 1대1로 대화를 해야 하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맡은 사물놀이 악기 소개도 영어로 해야 한다니 긴장이 안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리허설을 바라보는 나도 떨릴 지경이었다.
“괜찮아, 영어는 기세야. 자신감 있게 큰 소리로 말하면 돼!”태연한 척 대답하는 내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를 안정이가 듣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11월 8일 금요일 오후 6시, 영국 학교와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도 잊은 채, 덕과초 5학년 학생 9명과 영국 Bishop Challoner School의 아이들의 첫 만남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Hello, Nice to meet you!”
영국에서 전해지는 인사가 반갑고 신기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연주한 악기를 영어로 소개하였고, 사물놀이에 대한 퀴즈도 냈다. 영국 아이들은 사물놀이가 신기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수업에 집중해 주었다. 이어서 1대1 대화가 이어졌다. 각자의 웨일북으로 친구와 소통을 마친 아이들의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국제교류 수업이 남긴 것
“교감 선생님, 점심 시간에 갈게요!”
앞 뜰에서 줄넘기를 넘던 나의 영어 멘티 안정이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국제교류 수업을 준비하면서 교장, 교감을 비롯한 덕과의 모든 교사는 5학년 아이들의 영어 멘토가 되었다. 9월에 전학 온 안정이는 내성적이었고, 영어와 유난히 친하지 않은 친구였다. 아마도 영국 친구와 이야기해야 하는 계기가 없었다면 영어를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정이가 제 스스로 웨일북을 들고 교무실에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열심히 연습한 것을 다 펼치지 못해 무척 속상해하면서도 영국 친구가 생겼다면서 수줍게 웃어주었다.
“그래도 저 Time’s up!은 제대로 했지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안정이는 영어를 공부해야할 확실한 이유와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두 번째 국제교류 수업은 우리 한국의 전통놀이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힘들게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국제교류 수업 진행을 자청하신 덕과초 교무 선생님이 아이들보다 더 환하게 웃으신다.
진영란 덕과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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