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척' 할 수 없는 끈적한 욕망 [D:쇼트 시네마(81)]

2024-07-02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수의사 현우(박종현 분)는 보험조사관 태주(장원형 분)의 연락을 받고 경기도 외곽으로 출장에 나선다. 도착한 시골의 비닐 하우스에서 현우를 기다리고 있던 건 동물의 사체가 아닌 사람의 시체다. 다시 돌아가려는 현우를 붙잡고 태주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태주가 설명하는 사건은 이렇다. 중년의 남자가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했지만, 자살이라면 보험료를 받지 못하니 혼자 남은 고등학생 아들 지훈(이민구 분)을 위해서 농약을 세척해 타살로 사건을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태주는 현우에게 일정 금액을 사례하겠다면서 읍소한다. 현우는 잠시 고민하지만 태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시체 처리가 한창인 이 때, 중년 남자의 지인이 비닐하우스를 찾아오면서 일이 꼬여버린다. 지훈은 아빠의 시체가 발견될 위기에 처하자 지인 마저 죽여버린다. 시체가 둘이 되어버린 상황. 태주는 현우에게 첫 번째 시체에서 세척해 빼낸 농약을 두 번째 시체에 삽입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태주의 차 안에서 더 큰 사망보험금 액수가 적힌 계약서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현우는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사고는 시작부터 거짓으로 점철돼 있었다. 지훈의 아빠는 농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 아닌, 지훈이 소주에 농약을 넣어 살해했다. 태주는 지훈이 아빠를 살해하도록 부추겨 돈을 챙기려는 계획이었다. 지훈은 일이 꼬이자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수를 시도하고, 이를 말리던 태주를 공격, 큰 상처를 입힌다. 결국 지훈은, 자신의 목을 그어버린다. 태주 역시 상처에 농약이 흘러 들어가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현우가 허둥지둥 돈을 챙겨 비닐하우스를 빠져나가려 할 때, 숨이 붙어있던 지훈이 현우를 불러 세운다. 현우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현우의 차가 떠난 자리, 끈적하게 고여있는 핏자국에 개미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척'은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스릴과 반전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현우의 갈등과 선택, 지훈의 죄책감과 절망, 태주의 비열함과 최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특히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또한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빠른 전개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비닐하우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주는 폐쇄감과 긴박감이 영화의 서늘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오프닝 장면과 마지막 결말이 연결되면서 '세척'의 영어 제목이 왜 '스티키 나이트'(Sticky Night)인지 납득 시킨다. 러닝타임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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