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기계적 결정론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을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은 우주가 만들어질 때 주어지는 초기 조건에 의해 완벽하게 결정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자유롭지 않으며 단지 원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17세기 네덜란드의 위대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이러한 실수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은 의식하지만 그것을 야기한 원인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럼 인간의 생각은 환상에 불과한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작동
인간은 직관으로 과학 발전시켜
두뇌 양자역학적으로 작동 가능
양자컴이 인간 같은 AI 구현해
이 문제는 오랫동안 철학적으로 심오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는 그다지 관련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문제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만약 인간의 생각이 단지 원인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시 말해, 기계학습을 통해 알고리즘을 충분히 고도화한다면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2020년 블랙홀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다.
튜링 기계에 기반한 컴퓨터
펜로즈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결정론적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펜로즈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알고리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알고리즘이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수학적 절차다. 일상적으로 알고리즘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컴퓨터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앨런 튜링이 고안한 가상의 기계, 즉 튜링 기계에 기반하고 있다.
튜링 기계는 원칙적으로 모든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만약 알고리즘만 제대로 구성된다면 튜링 기계는 어떤 주어진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하는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튜링 기계는 어떤 주장의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튜링 기계는 임의의 주장에 관한 사실관계의 판단을 항상 유한한 시간 내에 끝마칠 수 있는가. 참고로, 이 질문은 ‘정지 문제’(halting problem)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튜링이 발견한 정지 문제의 답은 부정적이다. 튜링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아무리 알고리즘을 발전시켜도 튜링 기계로는 유한한 시간 내에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없는 주장이 반드시 존재한다. 튜링 기계는 그런 주장을 만나면 프로그램을 정지하지 못하고 무한 루프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직관에 따라 전진할 수 있다. 물론 직관이 항상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인간은 직관을 통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했지만 꾸준히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럼 직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펜로즈는 그의 저서 『황제의 새 마음』(The Emperor’s New Mind)에서 인간의 직관은 결정론적 알고리즘을 넘어설 수 있는 다른 무엇, 즉 양자역학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양자역학은 비결정론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모든 물질은 파동처럼 출렁인다. 물질의 파동은 파동 함수에 의해 기술된다. 그런데 파동 함수는 측정하면 붕괴한다. 파동 함수의 붕괴는 철저히 비결정론적이다. 펜로즈는 인간의 두뇌가 비결정론적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양자컴퓨터라고 주장한다. 불행히도, 많은 과학자는 펜로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효과는 보통 원자와 같이 크기가 아주 작은 미시세계나 초전도체와 같이 온도가 극도로 낮은 저온상태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의 두뇌는 크고 따뜻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 2024년, 인간의 두뇌가 실제로 양자역학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두뇌 속 도로 역할하는 미세소관
두뇌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이루는 복잡한 연결망이다. 뉴런을 포함해 모든 세포는 그 안에 미세소관이라는 작은 관들이 얼키설키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미세소관은 세포의 모양을 고정하는 뼈대의 역할을 한다. 미세소관은 뉴런의 작동에 특히 중요하다. 두뇌는 뉴런들이 서로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한다. 그런데 뉴런과 뉴런 사이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시냅스라고 불리는 물리적 틈새가 존재한다. 다행히 전기 신호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합물을 통해 시냅스를 건너 전달될 수 있다. 미세소관은 뉴런 속에서 신경전달 물질이 이동하는 도로의 역할을 한다.
2024년 4월, 학술잡지 ‘물리화학 저널’에는 미세소관에 관한 놀라운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상온에서 미세소관의 다발에 자외선 빛을 쪼이자 빛을 흡수한 미세소관들이 모두 협동해 정확히 동시에 빛을 방출하는 현상, 즉 초방사(super radiance)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미세소관이 양자 얽힘을 통해 하나로 뭉쳐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펜로즈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적 증거가 얻어진 것이다. 만약 펜로즈의 주장이 맞는다면 인간은 양자컴퓨터다. 그런데 이 주장을 거꾸로 뒤집으면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 즉 강인공지능은 인공신경망을 양자컴퓨터로 구현할 때 나타날 것이다.
박권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