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가족과 노래방 가는 88세…‘깡통 통장’으로 인맥여왕 됐다

2025-01-06

“낮에 산책하다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는데, 그만 물려버렸어요.” 활짝 웃으면서 밴드 붙인 손가락을 내보이는 그는 영락없는 우리네 어르신 모습이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스마트폰 커버, 신용카드가 여러 장 꽂혀 있어야 할 자리엔 전철 정기권만 들어 있다. 고(故)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 토요타 전 회장,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까지 방대한 인맥을 자랑하는 현역 기업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올해로 창업한 지 55년.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정도의 ‘황금 인맥’을 자랑하지만, 통장에 든 돈은 우리 돈 수만원. 개인 돈은 좋은 일에 다 퍼부었다. 더러 지갑에 든 돈이 없어 친구에게 전철비를 빌릴 때도 있지만, 마음은 거부(巨富)다. 올해 88세 곤노 유리(今野由梨) 일본 다이얼서비스 대표다. 일본의 1호 벤처기업가이자 벤처업계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그를 2024년 11월 3일 일본 지바(千葉)에서 만났다.

“내가 사치와는 정반대로 사는 이유요? 이상한 사람, 기이한 사람, 바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 덕에 일본에서 가장 인맥을 가진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요. 통장에 든 돈은 수천 엔이지만 내 재산은 그런 인맥, 사람이에요. 돈은 숫자에 불과해요. 간혹 돈을 통장에 넣어서 이불 밑에 쌓아두다 세상을 뜨는 사람들을 보곤 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 많아서 유복하게, 걱정 없이 지내는 인생도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은 재물이 다가 아닙니다. 일생, 재산이 줄지 않도록 하는 일만 하다가 인생을 끝내는 것은 불쌍한 일이잖아요? 돈보다 도전할 일이 있고, 내 의지와 노력으로 해냈다는 자부심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내게 벌어지는 일은 모두 의미가 있다”

1936년 일본 미에(三重)현에서 태어났다. 여섯 딸을 둔 딸부잣집 둘째 딸이었다. “운동신경은 없어도 모험심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선머슴처럼 뛰어놀았다. 수영할 줄 모르면서 물에 뛰어들어 친구들이 구해줄 정도로 겁도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란도셀(일본 아이들의 국민 책가방)을 방안에 던져두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를 바꾼 건 아홉 살 때의 경험이었다.

어느 날 밤, 어머니의 비명에 잠을 깼다. 공습경보가 귓전을 때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군이 일본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을 때였다. 전쟁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도망가야 한다는 말에 짐을 챙겼다. 동생을 업고 뛰는 엄마의 뒤를 정신없이 쫓았다. 얼마를 뒤따라갔을까. 정신을 잃었다. 뒤에 떨어진 포탄에 정신을 잃은 그를 등에 업고 뛴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어른. 정신을 차린 뒤 목격한 풍경은 지옥이었다. 마을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연못의 잉어는 살아 있으려나….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아홉 살 소녀이던 시절, 나는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셈이었다”고 했다.

“여자가 무슨 사장이냐”가 바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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