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24년의 흔적, 젊은 세대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2025-01-06

24년 전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영화 ‘밀레니엄 맘보’를 다시 보는 것은 진실로 ‘천국보다 낯선’ 일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현재 치매 투병을 위해 은퇴를 했다. 그는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전설이 됐다.

‘밀레니엄 맘보’는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이고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세기인 뉴 밀레니엄 시기의 기이한 희망, 일상의 불안, 흔들리는 세대에 대한 얘기이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모두들 환호했다. 다들 허우 샤오시엔의 걸작이 나왔다고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을까. 영화도 시대가 변하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다르게 보여야 하지 않을까.

오래전 이 영화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다 할 서사가 없다.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라곤 비키라는 젊은 여자(서기), 그의 오래된 연인 하오하오(단균호) 그리고 새로운 남자 잭(고첩)이 맺어 가는 얽히고설킨 관계뿐이다.

얽히고설킬 것도 없다. 하오하오는 비키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하고 잭은 잭대로 더 이상할 만큼, 남자에게 시달리는 여자에게 늘 친절하게 잘 대해 준다. 잭은 비키의 은신처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하오하오란 남자는 룸펜이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서 유흥비로 흥청망청 살아가는 대책 없는 젊은이이다.

시계는 당시의 대만 돈으로 8만 달러(260만원)이다. 비키는 하오하오가 가진 50만 대만 달러(2천2백만원)를 다 쓰면 바로 그를 떠날 거라고 매번 얘기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못한다. 그녀는 힘들 때는 잭에게 왔다가 다시 하오하오에게 끌려가곤 한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 없이 이런 관계의 반복을 보여 준다.

어쩌면 당시의 삶,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도 뭐 대단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거대 담론에 앞장서고 정치와 경제 역사를 얘기하는 척, 24년 전 대만의 젊은이들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부유(浮游)하고 흔들리는 삶을 지속하고 있을지 모른다.

비키와 하오하오는 늘 같이 텍 사운드 클럽(테크노 클럽)을 드나들며 술을 마시고 약을 하며 지루한 섹스를 교환한다. 일상은 대단할 게 없고 그때의 젊은이나 지금의 젊은 층이나 모두들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젊은 세대가 지니는 역설의, 기이한 특권일 수 있다. 그들은 방황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기약 없는 방황을 통해, 그 통과의례를 거쳐 뉴 밀레니엄, 곧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고독과 고통, 혼란을 지켜보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젊은이들은 역사적 서사를 만들 나이가 아니다. 개인적인 서사를 꾸려 가기에도 부족한 세대이다. 그러나 새로운 100년은 분명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주인공이다. 영화 ‘밀레니엄 맘보’가 하려는 얘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다르지만 같은 영화가 영국 마이클 윈터바텀의 ‘나인 송스’(2011)이다.

극중 남녀의 실제 섹스 장면이 들어 있어 일부에게서는 포르노그래피로 오인받고 있지만 이 영화 역시 극도의 방황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두 남녀가 하는 일이라곤 술을 먹고 약을 같이 하면서 섹스를 하고 록 콘서트에 가서 실컷 몸을 흔들다 돌아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또 약을 하고 술을 하며 섹스를 한다. 반복의 일상이다. 이들이 이러는 것은 그것을 너무나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1년이나 2011년이나 2025년 현재나, 젊은이들은 늘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기성세대는 일정 부분 목표를 찾았고, 쟁취했으며, 나름 누리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 상실감과 소외감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마련이다. ‘밀레니엄 맘보’나 ‘나인 송스’나 다 같은 맥락을 지닌 작품이다.

극 후반 비키는 잭의 집에 찾아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흐느낀다. 그건 매우 관념적인 사치의 행동처럼 보이지만 잭은 그런 비키를 말없이 받아 준다.

잭은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어머니 집은 홋카이도이며 외할머니는 유바리에서 선술집과 여관을 운영한다. 비키는 잭을 따라 유바리에서 눈을 구경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런 잭이 홀연히 사라진다. 잭은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무슨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는 일본 야쿠자 조직의 일원으로 보인다.

그녀는 잭을 찾아 도쿄 신주쿠의 한 여관으로 가지만 그를 만나지 못한다. 비키는 잭이 남긴 핸드폰만을 가지고 일본을 떠돈다. 그녀의 독백이 이어진다. 거리에는 노동자들과 학생, 주부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비키는 마치 그들 중 하나인 척 행동한다.

젊음의 치기를 벗고 기성세대로 편입된 잭을 통해 비키는 드디어 그들 중 한 명으로 변신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긴 터널을 지나 왔으며 잭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 것처럼 자신이 이제 기성의 세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이제 그 문턱에 도달해 있음을 깨닫는다.

비키가 잭의 코트에서 나는 애프터 셰이브와 담배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비키는 지긋지긋했던 하오하오와의 섹스도 추억한다. 그녀는 그를 눈사람으로 기억한다. 눈사람은 해가 뜨면 사라지듯이 그와의 섹스가 서글펐다고 말한다. 비키는 이제 더 이상 하오하오를 생각하며 화를 내지 않는다.

사라지기 전 잭은 그녀에게 일본으로 혼자서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키는 그게 꼭 잭, 자신에게 오라는 얘기인 것을 알게 된다. 그 둘이 만나게 될지 그렇지 못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기성의 세대는 젊은이들이 꼭 자신의 세계로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성의 질서와 새로운 가치가 꼭 합치되리라는 법은 없다. 현재는 과거에서 배우고 과거는 현재를 통해 그 존재감을 구현해 낼 것이다. 그럴 때가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영화 ‘밀레니엄 맘보’가 예전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기억의 회로 하나를 더 열고, 켜는 것뿐이다. 이 영화가 나왔던 2001년보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진화하고 진보했는가. 우리의 일상은 보다 행복해졌는가. 그때 고민했던 20대들은 지금 50대가 가까워졌고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바꿔 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세월의 흔적과 더께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약간 서글퍼진다. 우리 모두는 눈사람일 뿐이다. 해가 뜨면 녹아서 사라지는 눈사람. 영화 ‘밀레니엄 맘보’는 그런 상징의 눈사람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영화이다. 이 ‘밀레니엄 맘보’가 비상계엄과 쿠데타와 탄핵의 고통의 길을 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떤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어떤 해법과 혜안을 주게 될까. 젊고 새로운 관객들의 반응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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