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와 글

2025-01-07

지난해 사위어가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매일같이 나눠준 시인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를 나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의식을 잃은 그는 시인의 글과 사진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세상과 저세상에 걸쳐 있는 아버지가 이리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없었으나, 글 쓰는 딸을 둔 덕에 그는 한 편의 시가 되어 병실 밖으로 나와 우리 사이를 걸어 다녔다. 연말에 그 아버지의 부고가 날아왔다. 나는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 곧 김유태의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읽었다.

참사 앞에서 문학 무용하지만

죽음의 기록에서 사는 힘 얻어

충분히 애도해야 평화 찾아와

여기 담긴 시들은 여러 해 전 저자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쓴 것이다. 불안의 풍경을 붙들며 그는 활자 속에서 미래의 죽음을 미리 떠돈다. 나는 저자의 어머니 또한 뵌 적 없지만 기록은 공동의 자산이므로 수십 편의 만가(輓歌)로 엮인 이 책을 나는 상가에 다녀올 때면 버릇처럼 펼친다. “시화(詩話)된 것 속에서 삶은 시를 통해 규정된다”고 벤야민이 말했듯, 나는 죽음을 노래한 그의 시에서 삶의 형태를 찾으려 애쓴다.

1년여 전 죽은 편집자 K는 내 책장 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살아 있는 존재다.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골라내기 힘들 때면 K가 만든 것을 읽었다. K가 기획한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날이면 나는 서둘러 읽으려고 집에 달려갔다. “앞으로 다가올 삶과 이제 막 끝난 삶을 구분하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 이건 K가 기획한 로베르 에르츠의 『죽음과 오른손』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모던한 디자인인데, 내 것은 손때가 묻어 낡았다. 손때는 마음의 흔적이다. 시간은 언제나 정서와 함께 흘러가고, 정서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각인한다. K가 만든 이 책으로 인해 내 안에 수많은 죽음을 새겨넣을 수 있었다.

13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은 그 시신을 탑으로 쌓아 수많은 문학작품과 역사서를 탄생시켰다. 그중 병사들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곧 ‘현대의 탄생’이었음을 이론화한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은 뛰어난 학술 성과의 하나다. 엑스타인스는 어떻게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 전쟁에 참전한 사람의 다수가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주로 꺼낸 것은 노트와 펜이었다. 가령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도 1918년 전선에서 완성한 것이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1960년대에 프랑스 문단을 풍미했던 누보로망 작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프랑수아즈 사강,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를 마음에 안 들어 했는데, 이유는 이들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는 동떨어진 현실 속에서 창작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뒤라스의 남편 로베르 앙텔므는 레지스탕스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었고 37㎏의 몸으로 귀환했다. 뒤라스는 남편을 기다리던 1943~1945년 일기를 썼고, 40여 년 뒤 이를 출간했다. 바로 『고통』이라는 작품이다. 이 책에는 나보다 더 나 같은 사람의 죽음을 침상과 거리에서 지켜보는 이의 고통이 흘러넘친다. 고통은 이따금 천재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여기 담긴 단말마의 비명 같은 문장들은 죽음을 기록할 때 만연체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명과 울음은 짧고 높게 터져 나온다. 그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이 책을 1년 전 읽으면서 나는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고(故) 최유진씨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요즘은 고인을 무덤에 매장하는 일이 드물다. 사흘간의 장례식을 치른 뒤 죽은 이는 오히려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며 시시각각 함께한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죽기 전부터 기록을 하기 시작한다. 즉 수많은 작품은 죽음 곁에서 탄생한다. 그것도 가장 뛰어난 문장으로. 다만 사회적 죽음이라고 명명할 만한 일들은 예민하고 첨예한 정서와 사고를 요구한다. 애도와 회고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우리가 얻는 것은 단 하나, 기억뿐이다.

근래 몇 년 사이 한국의 시간은 죽음의 리듬을 따라 이어지곤 했다. 사회적 참사든, 대규모 사건 사고든 우리 목숨은 너무 싼 값에 치러지거나 혹은 사는 데 너무 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 문학은 처참한 죽음 앞에서 쓸모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남긴 파편의 기록들은 한 죽음이 다른 죽음의 가장자리에 이어 붙여지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이들은 글쓰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곤 하며, 그 활자들이 리듬을 갖출 때 우리 사이에서 오래도록 공명하게 된다. 평화와 고요는 서둘러 찾아오지 않는다. “고통에겐 자리가 필요하다.” 뒤라스가 한 말이다. “슬픔이란 파도처럼 밀려오는 법이어서 목표, 기획, 계획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해도 실패하고 만다.” 이건 주디스 버틀러의 말이다. 슬퍼할 만한 삶을 살다 간 이들을 애도하며 시작하는 새해의 첫 달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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