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죽음’과 관련된 피해자는 두 번의 피해를 경험한다. 개별의 ‘사건’은 저마다 다르다. 일하다 죽거나 재난·참사의 피해자가 되는 각각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첫 번째 ‘사건’ 이후, 진실에서 소외되는 체계적인 박탈의 경험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의 피해가 발생한다. 이들은 ‘피해자의 가족’에서 ‘피해자’가 되는 경험, 살아서 ‘유가족’이 되었지만, 그 ‘사건’의 피해를 ‘사건 이후’ 겪어낸다는 점에서 또 다른 당사자이자 주체가 된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자 기존의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다 꼬리만 남은 비행기의 잔해를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다. 비행기 꼬리는 각자 자신들이 겪은 ‘사건의 원점’과 포개어진 것 같다. 무너진 백화점의 철골이 튀어나온 그을린 벽 앞에, 가라앉는 배 위에, 불에 타다 못해 녹아내린 지하철 안에 자신의 삶을 묶어놓은 유가족들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지난 1월1일,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광주 학동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제천 화재 참사, 부천 화재 참사, CJ푸드빌 화재 참사 등 재난·참사 유가족들과 고 김용균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이 무안공항으로 모였다.
1월1일은 사고 현장이 유가족에게 공개되는 날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직전에 공개된 사고 현장의 충격에 더해 밀려드는 친척들의 조문으로 직접 만나기가 어려웠다.
유가족협의회를 돕는 지역 관계자가 멀리서 찾아온 유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장례 이전과 이후 정부의 태도가 아주 많이 달라질 거예요.” “빨리 끝나지 않을 겁니다. 저는 10년째 싸우고 있어요.” 이날 유가족들은 마치 자신의 ‘의무’인 듯이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말하고 싶어 했다. 자신들이 진실에서 소외되었듯이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들도 같은 피해를 겪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얼마 전,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국토교통부가 진행하는 사고 조사에 유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할 것을 요청했으나 국토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이해하는 피해자의 ‘알권리’와 피해자가 요구하는 ‘알권리’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정부는 종종 국민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의 이행’으로 알권리를 대체한다. 정부가 제공할 정보는 ‘법적 기준’에 부합하느냐의 문제를 맴돈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하는 ‘앎’은 삶이 파괴된 보다 근본적 ‘진실’이다. 로컬라이저가 법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국토부의 첫 번째 브리핑은 정부가 이미 진실과 가장 멀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 조사의 유가족 참여’는 국가를 불신하거나 음모론 따위를 믿어서가 아니라, 참사를 둘러싼 그 어떤 진실에서도 배제되지 않겠다는 주체적인 목소리다. 객관적인 사고 조사를 위해 유가족의 참여를 거부한다는 정부의 태도에 ‘기계적 중립’이라는 낡은 가치의 견고함을 본다. 불타 없어져야 할 것은 마땅히 이런 것들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