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즐기는 우리들도 모두 각자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존재”
보드게임에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두고 일부 이용자들이 크게 반발한 가운데,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이미 사용된 완경이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최대 보드게임 제작유통사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이라는 제품을 공개했다. ‘뉴욕 응급실’은 네덜란드 보드게임 아이덴터티 게임즈가 개발한 것으로, 응급실 의사 입장에서 환자들을 문진·증상만으로 이들의 병증을 적절하게 분석, 올바른 치료법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논란은 상품 상세 페이지에 담긴 제품의 일부 사진에서 시작됐다. 한 환자의 접수면접 기록에 “환자는 완경기가 지난 53세 폴리네시아계 여성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는데, 일부 누리꾼들이 ‘폐경기’를 ‘완경기’로 번역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완경(完經)은 폐경과 함께 여성의 월경 종료를 뜻하는 단어다. 국립국어원은 완경은 ‘폐경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라면서 “각각의 단어 성격에 따라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중반 완경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안명옥 제3대(2014~2017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월경의 끝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정상적인 여성의 삶의 일부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완경이라는 단어가 특정 집단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뉴욕 응급실’ Q&A란에는 “완경이 페미가 적극적으로 미는 단어라는데”, “코보게(코리아보드게임즈)는 페미인가요? 번역자가 페미인가요?“, ”특정 집단만이 주장하는 단어를 상품에 사용한다는 것은 기업으로써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의학적 몰입감이 중요한 게임에 의학 용어가 아닌 말을 넣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등 반발 의견이 줄을 이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 중 하나인 ‘보드라이프’ 등에서 불매 운동까지 일어났다. 많은 이들이 “코보게 대응 정말 실망스럽다”, “코보게에게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했냐”, “시원하게 회원 탈퇴했다”,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할 때까지 (게임을) 사지 않겠다”며 불매운동 동참 의사를 알렸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지난 12일 자사 홈페이지에 “완경 논란에 대해 말씀드린다”고 입을 열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번에 ‘완경’이라는 단어를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에서 발견하고 당황하신 분들이 계셨다”면서 “경위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채로 완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단어를 수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고객의 의견 중에는 이 단어가 엄밀한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 용어라는 것이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며 “언어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의학 용어조차도 그렇다. 훗날 국립중앙의료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어떤 산부인과 의사의 입을 통해서 1990년대에 완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의학 용어가 어떤 불가침의 것이 아님을 그 의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언어가, 용어가 변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당사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어감’이라는 것도 있다”며 ‘정신분열증’, ‘꼽추’ 등의 단어를 그 예로 들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의학 용어였다. 현재는 조현병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꼽추라는 말은 척추측만증이라는 말로 대체됐다”며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말을 고치는 것이 전통적 단어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학의 최대 목적은 사람을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다. 완경이라는 표현 역시 이와 비슷한 범주의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폐경은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일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여성들이 겪게 될 일이다. 폐경을 겪은 당사자들은 상실감이나 좌절감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다고 한다”며 “실제 단어의 뜻과 상관없이 폐경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완경이라는 표현은 삶의 단계 하나를 완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를 대체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긍정적인 기분을 들게 해준다면 써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드게임을 즐기는 우리들도 모두 각자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면서 “저희는 이미 사용된 완경이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코리아보드게임즈 홈페이지에는 “입장문을 보고 구매하러 왔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용어 하나에 집착하는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신있는 기업에 매출로 보답하자”, “얼마 전 완경하신 어머니와 함께 플레이하겠다” 등의 후기와 문의글을 통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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