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재단’이 이르면 내년 고성능 양자컴퓨터를 출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재단은 혁신적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개발한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최대주주 ‘노보 홀딩스’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위고비 열풍의 실질적 주역이 이번엔 양자컴퓨터 경쟁에 등판한 셈이죠.
노보 노디스크는 17일(현지 시간) 덴마크 국영기관 ‘수출투자기금(EIFO)’과 총 8000만 유로를 투자해 민관 합작법인 ‘큐노스(QuNorth)’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레벨2 양자컴퓨터 ‘마그니(Magne)’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큐노스는 양측으로부터 4000만 유로씩 출자받아 약 10명의 전문인력을 두고 연내 양자컴퓨터 개발에 착수합니다. 내년이나 2027년 개발 완료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서비스할 계획이죠.
마그니는 원래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신 ‘토르’의 아들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마그니는 세계 최초 레벨2 양자컴퓨터이자 현존 가장 강력한 양자컴퓨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게 노보 노디스크 재단의 포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레벨2 양자컴퓨터란 앞서 구글 ‘윌로’ 등을 통해 소개했던 논리적 큐비트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를 뜻하는데요. 실제 큐비트(물리적 큐비트)들 여러 개에 같은 계산을 맡겨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입니다. 같은 계산을 수행해 하나의 정보값을 구현하는 물리적 큐비트 집합을 논리적 큐비트라고 합니다. 레벨1은 물리적 큐비트 기반이고요. 마그니는 물리적 큐비트 1200여개, 이를 통해 구현되는 논리적 큐비트 50개 규모로 개발될 예정입니다.
노보 노디스크 재단은 사실 이전부터 양자컴퓨터 사업을 준비해왔습니다. 2022년 ‘노보 노디스크 재단 양자 컴퓨팅 프로그램(NQCP)’과 ‘양자 파운드리 코펜하겐’을 출범하고 레벨2를 넘어 레벨3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레벨3은 ‘고품질 논리적 큐비트’로 계산오류를 실질적으로 크게 줄일 수 있는 ‘내결함성 양자컴퓨터’ 단계입니다.
노보 노디스크 재단이 양자컴퓨터에 공들이는 목적은 우선 주력 사업인 신약 개발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전편에서 미국 아이온큐가 양자컴퓨터로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AI) ‘알파폴드’ 같은 단백질 구조 분석에 도전 중이라고 했죠(참고 기사: 구글 알파폴드에 도전장 내민 양자컴 [김윤수의 퀀텀점프]). 몸속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수많은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알아야 그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할 신약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단백질 구조 분석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최적의 선택지를 찾는 문제이고 이는 큐비트 기반 병렬 연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의 특장점이라고 했죠.
노보 노디스크 재단은 이날 발표를 통해 “마그니는 세포 내 DNA 손상, 혈액 내 항산화 물질 조절, 질병 진행과 약물 치료 과정에서의 단백질 역할, 빛과 생체 분자 시스템의 상호작용 등 생물학적 시스템의 다양한 양자화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양자컴퓨터로 신약 연구를 효율화해 향후 위고비를 잇는 차세대 혁신 치료제 개발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재단은 비슷한 취지로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와 손잡고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게피온’을 도입한 바 있습니다.
물론 마그니는 민관 합작으로 개발되는 만큼 노보 노디스크만을 위한 제품은 아닙니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컴퓨터 기술패권을 두고 다투는 가운데 유럽, 특히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도 ‘양자 주권’을 가지겠다는 것이죠. 모르텐 뵈드스코브 덴마크 산업·비즈니스·재무부 장관은 “중국과 미국은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뒤처지고 있다”며 “덴마크와 유럽연합(EU)은 양자 기술이 가져올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담으로 덴마크는 오늘날 양자컴퓨터를 있게 한 양자역학 초기 역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배출한 덕이죠. 보어는 당대 최고 권위 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맞서 ‘입자가 여러 곳에 확률적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기묘한 양자역학 이론을 물리학계 주류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이론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