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걷게 하는 ‘힘’”

2025-06-11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한 터전을 일궈내는 이들을 만나 왜 문학을 하는지 듣는다.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왜 이런 책들을 출판하느냐고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취향.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을 주로 취급하는 ‘구픽’의 김지아 대표도 그렇다. 독자에게 자신의 취향을 믿고 읽어달라고 말하는 김 대표를 지난 1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한때 “장르 시장은 딱 500부”라는 말이 있었다. 대박 나긴 어렵지만 책을 내면 무조건 사는 장르 시장의 마니아 독자가 500명쯤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일까 2016년 낸 구픽의 첫 책 존 스티클리의 밀리터리 SF <아머: 개미 전쟁>도 500~600부 정도 팔렸다. 1쇄로 약 1500부를 찍었으니 대단한 적자였다.

그때로부터 10년여가 지난 지금, 장르 문학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도 문학계의 반응도 많이 달라졌다. 김초엽, 천선란 등 대중의 지지를 받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김보영, 배명훈, 곽재식처럼 오랫동안 업계를 지킨 중견 작가들의 위치도 공고하다. 정보라 작가의 작품은 해외 유수 문학상 후보로 오른다.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들 대부분은 활동력도 왕성해 작품이 나오는 주기도 짧다.

장르 문학의 부흥을 체감하지만 “구픽의 책이 잘나가는 건 아니”라며 웃었다. 그는 “‘500부 독자’들은 지금도 확실히 마니아적인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잘 팔리겠지 기대하는 책들은 있다. 작가 녹차빙수의 <바깥 세계>다. 그는 “대중적인 작품은 아닐 수 있는데 굉장히 특이하다. 기묘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의 책장을 덮고 나면 아 ‘이 얘기였구나’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노인의 전쟁>으로 유명한 존 스칼지의 작품들도 잘 됐으면 하는 책 중 하나다. 김 대표는 “정통 SF에 현실을 녹여냈는데 코믹하면서도 작품성 있는 소설이 많다”고 추천했다.

구픽의 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스토너>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부처스 크로싱>이다. 자연주의 철학에 심취한 주인공이 가상의 산골 마을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해 겪는 인간의 폭력성과 자연의 냉엄함을 다룬 소설이다. 김 대표는 “‘스토너’같은 느낌의 소설은 아니다. 존 윌리엄스에게는 이 작품이 일종의 ‘장르’가 아니었을까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장르 문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 책이 많았는데 셜록 홈스, 괴도 뤼팽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 중학교 때는 외국 드라마 에 빠졌다. 아버지는 월급날이면 어린이 만화 잡지 <보물섬>을 사다 줬다.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경험들이 그를 장르 문학 애호가로 만들었다. 구픽을 차리기 전에는 대형 출판사에서 장르 소설 담당 편집자였다. 40대를 맞이할 즈음 퇴사했다.

김 대표는 “그 시절만 해도 출판사에 40대 이상 여성 팀장이 별로 없었다. 직원은 여성이 많은데 ‘왜 출판사 임원진은 여자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누가 뭐라 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고 여기서 마흔 넘어서까지 있긴 힘들겠다 싶어 나왔다”고 했다.

1인 출판사는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과 잘 맞았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처리해도 되는 업무가 많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작가와 접촉하는 일도 잦 그간 다수 작업한 곽재식 작가와는 10년 인연 중 딱 세번 밖에 대면해 만나지 않았는데도 업무가 원활하다. 주로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작가와 소통하고 독자들도 만난다.

오는 18일부터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맞아 오랜만에 외부 활동을 한다. 타 출판사와 함께 부스 하나를 배정받았다. 전혜진 작가 사인회 등을 준비했다. ‘주류의 바깥, 장르의 내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선보인다.

문학이란 큰 목표가 없어도 자신을 “걷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부자가 되고 싶기도 했어요. 지금은 오래 일하고 싶어요. 감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80살까지, 장수한다면 여든 넘어서라도 계속 일하고 싶어요.”

▼구픽에서 출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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