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달째 계속되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 측이 최근 농산물 분야 등의 ‘비관세 장벽’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의 협상에서 미국은 ‘트럼프 관세’를 없애는 대가로 한국에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었는데 최근 실무자급 협의에서 조금씩 언급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30개월령 이상 수입 금지, 유전자변형 생물체(LMO) 수입 절차 등을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있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일~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미국 측은 그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 보고서)를 통해 주장했던 한국의 ‘비관세 장벽’ 중 일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주 실무협의에서 NTE 보고서에 담겨있는 한국의 비관세 조치 일부에 대해 양국이 논의했다”면서 “다만 미국이 몇가지를 콕 집어서 해소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고 문제를 공유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 USTR 대표와 만나 향후 실무자급 협의를 본격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NTE 보고서는 미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미국의 무역상대 약 60개국의 무역장벽을 분석해 내놓는 보고서다. 올 3월에도 보고서를 펴 냈는데, 한국의 경우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 유전자변형 생물체(LMO) 수입 절차, 공공 클라우드 보안 규제,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 망 사용료, 약값 정책의 투명성,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등이 ‘비관세 장벽’으로 두루 기술됐다.
특히 ‘검역 주권’ 논란이 뒤따를 수 있는 미국산 쇠고기 및 LMO 관련 규제도 거론됐을 가능성이 높아 향후 관련 논의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NTE 보고서 내용 중 농산물 분야가 한·미간 논의 대상에 포함됐는지 묻는 질문에 “보고서에 나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일단 논의를 했다”고 답했다.
미 쇠고기 수입 월령 규제는 미국 측이 매해 NTE 보고서에서 지적해 온 ‘비관세 장벽’이다. 미 정부는 올해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2008년 쇠고기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하면서 ‘과도기 조치’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면서 “그런데 그 ‘과도기 조치’가 16년간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월령과 관계없이 분쇄 쇠고기 패티, 육포, 소시지 등의 가공 쇠고기 제품도 계속 수입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LMO와 관련해선 “산업부 등 5개 기관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각 기관마다 고유한 데이터 제출 요건을 갖고 있다”며 ‘절차 간소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각에선 ‘쌀 시장 개방’ 압력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표에 앞서 “한국이 (수입 쌀에 대해) 50%에서 513%까지 관세율을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미국산 쌀에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인 13만2304t에 대해서는 관세 5%를 적용하고 TRQ 초과 물량엔 513% 관세를 매긴다.
미국 측이 구체적 요구 사항을 드러내기 시작한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도 분주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주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한미 기술협의 결과를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통상당국은 당분간은 미국 요구사항의 우선순위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주력하면서 주요 결정은 차기 정부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